‘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먼저 꺼낸 말이 아니다. 2013년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 전 총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중앙지검장 허락 없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검찰을 향해 “세간의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정권 초기, 선거 개입 실체가 밝혀지면 당연히 박근혜 정부 정통성에 흠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 의원은 “앞에 불러내기도 싫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며 윤 전 총장을 세운 뒤 “증인은 조직을 사랑하느냐. 혹시 사람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윤 전 총장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전 총장은 수동적으로 답했을 뿐인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극적인 말을 남긴 것처럼 회자된 이유는 그가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구도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윤 전 총장에게 들인 애정은 각별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을 직접 발표하며 힘을 실어줬다. 검찰총장이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중앙지검장이 총장으로 직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급을 고검장급에서 검사장으로 낮췄지만 청와대는 이 말을 뒤집으면서까지 윤석열 지검장을 총장에 앉혔다.
하지만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수사를 기점으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원전 조기 폐쇄 의혹 사건까지 윤 전 총장은 여권을 향한 수사를 이어갔고 정치권과 관계가 틀어졌다. 전에는 차기 대권후보군 여론조사를 할 때 자신을 빼달라고 했던 윤 전 총장은 어느 순간부터는 정치에 참여할 것이냐 추궁하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계획을 묻는 말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봉사에 정치도 포함되느냐”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사퇴 의사를 밝히기 전날 취재진의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다”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윤 전 총장이 좌천인사를 겪게 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당사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대법원에서 실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와 척을 지게 된 조국 전 장관 사건에서는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공격에도 수사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1988년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2년을 채우고 정상적으로 퇴임한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검찰총장은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사표를 던질 수 있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헌법은 검찰총장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영장은 검사의 신청으로 법관이 발부하도록 정했다. 검사를 수사 주체로 정해놓은 이상 검찰청을 실질적으로 폐지하거나 수사권을 박탈하는 입법은 위헌 소지가 크다. 또 다른 ‘윤석열 검사’가 계속 나오려면 윤 전 총장의 사직 의도가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윤 전 총장이 현실정치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