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 ‘코로나 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 발간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조선시대 백악(현 북악산) 기슭 삼청동에 옥호정(玉壺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순조 때 권력의 정점에 오른 김씨 김조순의 집이다. 현재 행정동 기준 서울 삼청동 133-1, 2번지에 자리했다. 옥호정도(玉壺亭圖)를 보면 집은 산과 개울로 둘러싸여 배산임수형에, 대문과 몸채를 남쪽으로 배치한, 요즘 사람들도 최고로 치는 남향집이다. 사랑채 앞 너른 마당은 집주인의 넉넉함을 드러낸다. 마당에는 파초, 홰나무, 작약, 노송과 괴석을 올린 화분으로 장식돼 있고, 연꽃을 띄운 수조도 있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 단골 조경으로 쓰이는 기암괴석을 두른 연못과 흡사하다.
6일 서울역사편찬원이 최근 펴낸 ‘코로나 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를 보면 집과 관련한 한양 사람들과 요즘 서울 시민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연을 끌어들인 그림 같은 집은 예나 지금이나 ‘꿈의 집’이다. 특히 한양도성 내 집은 풍류를 아는 선비들의 모임자리로 쓰였다. 김홍도의 취후간화도(醉後看花圖)에는 대나무 옆에 한 쌍의 학이 노닐고, 소박한 집 앞에 둥글게 휘어있는 매화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매화나무 아래에는 하인이 대롱으로 불을 지피고 있다. 매화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커다란 통창이 뚫린 방 안에는 두 선비가 책, 술병을 옆에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런 집이라면 몇날 몇일 ‘집 콕’이 가능할 것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다.
한양 양반들도 집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내외법에 의해 여성과 남성의 공간이 분리돼 있었다. 여성의 공간인 규방에는 양 귀퉁이에 탁자를 놓고 가운데 보료를 깔았다. 문갑, 장과 농, 경대 등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의 목재로 가구를 두기도 했다.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는 업무, 학문, 일상을 위한 공간이자 정치를 위한 사교의 장이었다. 사랑방에는 검소하고 안정적인 분위기의 목가구, 책을 모아두고 글을 쓰기 위한 문방사우 등을 두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를 통해 한양 양반들의 서재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 대원군의 앞에는 사선탁자와 협탁을 두고, 탁자 위에 안경, 염주, 벼루와 붓, 도장, 인주함, 화살통 등을 두었다. 협탁에는 청동향로, 금색의 자명종을 두었다. 그림 속 기물은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가품이 많아 국왕의 아버지였던 이하응의 권력과 위엄을 알 수 있다.
한양 사람들의 내 집 마련은 쉬웠을까? 한양 사람들은 집을 얻으려면 몇 가지 절차가 있었다. 먼저 한성부(오늘의 서울시청)에 희망하는 집터를 선택해 청원서(신청서)를 냈다. 그러면 한성부는 허가해주기 전에 관상감 관원과 측량사인 산사를 보내 집터가 궁궐의 지맥을 손상하는 곳이 아닌지 살폈다. 빈 터거나 만 2년 이상 거주한 자가 없다면 집터를 나라에서 나눠주었다.
지방 출신이 한양 집을 구하려다 봉변을 당한 일화도 남아있다. 훈련도감 포수로 일하기 위해 상경한 박광학은 한양에 살고자 천안 경주인의 땅을 빌리게 됐다. 땅 주인을 수소문해 집을 빌린다는 합의서를 받고, 한성부에 차입 승인을 요청했다. 집주인과 합의가 되었다면 집터 사용을 허가한다는 한성부의 승인도 잠시,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박광학이 집주인을 잘못알고 청원을 올린 것이다. 원래 주인은 나타나 집을 부수고 박광학은 집을 마련한지 3년만에 쫓겨났다.
이처럼 한양 사람들도 집 값이 비싸 세를 들어 살아야했던 처지였다. 지방과 서울의 양극화도 지금보다 덜하지 않았다. 지방에는 1000냥 넘는 집이 드물었지만 한양에는 그 보다 20배 넘는 2만 냥이 넘는 집도 있었다. 이렇다보니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양반(여가차입·세입), 남의 집을 빼앗는 양반(여가탈입)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 ‘집주릅(가쾌, 오늘의 부동산 중개인)’을 하여 부를 누리는 사람도 나타났다. 집 한 칸 없는 설움이 비단 오늘날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코로나 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는 14개의 주제를 통해 조선시대~근현대 서울 사람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2021년 상반기 서울역사강좌의 교재로 사용될 예정이다. 시중에선 1만 원에 구매할 수 있으며, 서울시 각 도서관에는 무상 배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