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외교관 김완중의 ‘나성에가면’ 게재

미국에 첫 발을 디딘후, 감귤농장에서 일했을때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미소. 그는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따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에 첫 발을 디딘후, 감귤농장에서 일했을때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미소. 그는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따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도산 안창호는 미국 뉴욕 거리를 거닐다 주인공인 한국인 출신 미군 예비역 유진초이에게 콜롬비아대학 가는 길을 묻는다. 유진초이는 “조선인이시오?”라고 묻자 도산은 “타국에서 동포를 뵈니 반갑습니다”라고 답한다.

도산은 유진초이가 미국에 온지 3년이 됐다고 하자, “3년이면 잘 모르시겠네요”라면서 그간 을사늑약, 일제 통감부의 조선 장악, 미국이 대한제국의 손을 놓고 공사관 철수한 사실 등을 전한다.

유진초이가 자신을 “최유진”이라고 소개한 뒤 “조선은 쉽게 굴복하지 않을 거요. 지키는 자들이 있소. 의병들이”라고 말하자 도산 안창호는 “저도 그들 중에 하나입니다”라고 답한다.

최유진은 국내 외국인 묘지에 묻힌 실존인물을 토대로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드라마에 등장시킨 인물이다. 둘이 실제 미국에서 만났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구국의 ‘미스터 션샤인’ 중 한 명이 도산임에는 틀림없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따는 오렌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은 24세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데 이혜련 여사와 결혼 다음 날 제물포항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것은 1902년 10월이었다. 극중에 묘사된 풍경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로 추정된다.

현지에서 먹고 살 일 조차 막막했던 도산은 먼저 농장 막노동자로 취업한다. 오렌지 농장에서 마른 모습으로 작업복 차림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진 속 도산 안창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사복 차림의 도산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따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흥사단 단원 지원서에 보면 교육행정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적혀있는데 도산은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현실 앞에 수 년 뒤인 1907년 가족을 남겨 두고 홀로 귀국을 결심한다.

이후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치던 도산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가 있던 날, 일본 경찰에 붙잡혀 인천을 거쳐 서울로 압송된다. 도산은 4년 실형을 받아 서대문, 대전 감옥에서 복역한다. 1935년 대전 감옥에서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지만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체포되어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다. 1937년 12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이듬해 3월 10일 그토록 원했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경성대학 부속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나성에 가면, 재미 한인들의 애환이..=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미국내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와 최근까지 재미동포들이 겪은 일들이 30년 외교관을 했던 김완중의 에세이집 ‘나성에 가면’(컬쳐플러스)속에 담겼다. 김 작가가 현장을 발로 뛰며 접한 ‘한국 밖의 한국’ 이야기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LA 총영사를 지냈다.

김완중의 ‘나성에 가면’
김완중의 ‘나성에 가면’

도산 안창호의 가족 이야기를 비롯, 일제강점기 해외 임시정부 역할을 했던 대한인국민회, 한인들의 남모를 정체성에 대한 고뇌,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영사 업무와 자국민 보호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담한 어조로 담겨 있다.

도산은 5남매의 가장이지만 독립운동에 매진하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평생 미안함과 죄스러움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녀 수산은 아버지 도산을 이렇게 평가했다. “My father was a great man, but a terrible father.(아버지는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자식에게는 형편없는 아버지였습니다).” 수산은 한국인 아버지를 찾아서, 아니 자신을 찾아 나선 여정 끝에 ‘버드나무 그늘’이라는 책을 썼다. 평생 떨어져 살았지만 자신의 삶이 아버지 도산과 뗄 수 없는 것이었다는 자각에서였을 것이다.

▶위대한 인물, 형편없는 아버지= 도산은 1914년 부인 이혜련 여사가 보내온 연꽃을 받고 이렇게 적는다. “옛날 평양 장대제에서 혜련이 보낸 오렌지 꽃을 받던 감상이 더욱 생각납니다. 나는 꽃보다 그 보낸 마음을 사랑하여 꽃을 품에 두었소이다.” 그가 고단한 오렌지 농장에서 미소 지으며 일했던 이유가 추정된다.

아흔이 넘은 도산의 막내 아들 랠프 안을 미 현지에서 만나기도 했던 저자는 “랠프 안은 아버지 도산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도산의 유지를 받들어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멋진 노신사”라고 평했다고 전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첫 해외이민이 시작된 지 110여 년이 흐른 지금 LA에는 현재 80만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미 본토 최초의 한인타운인 파차파 캠프도 이곳 LA와 가까운 리버사이드에 있었다. LA를 포함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은 250만 명이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은 750만 명에 달한다.

저자는 LA판 국립현충원이라 할 수 있는 로즈데일 공원묘지, 현재 남가주대학 한국학 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 가족이 생활했던 가옥, 항일 비행학교 사적지 등을 방문하며 느꼈던 한인들의 피땀과 애환을 들려준다.

▶“잘 나가는 조국, 해외동포에 손길을”= 또한 친일파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처단해 미주 독립운동의 횃불을 드높인 장인환·전명운 의사, 3·1 운동 직후 캘리포니아 중부 윌로우스에 항일비행사 훈련학교를 세우고 임시정부 군무총장을 역임한 노백린 장군, 헤이그 평화회의 대표단 통역을 맡은 송헌주 선생,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나오는 임천택 선생을 비롯 해외에서 “독립은 아니보리”라는 각오로 구국활동을 벌였던 독립투사와 선조들을 소개한다.

최근 기록으로는 악몽 같았던 LA 폭동,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한 한인 입양인이 1만 8천 명, 현지 랭카스터 교도소에 수감된 한인들, 길거리에서 고통받는 한인 노숙자, 저자가 2012년 싱가포르 근무 시 소말리아 해적들에 납치된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이 풀려나도록 동분서주했던 얘기 등이 담겼다.

저자는 “우리 해외동포들이 경제적 빈곤, 신분제의 속박, 잦은 외세 침략 등과 같은 고통스러운 역사의 쇠사슬을 끊고 글로벌 한인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섰다”며 “750만 해외동포가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공통분모로서 세계 어디에 살든지 품격 있고 보다 인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이제 모국이 손을 내밀 때가 왔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