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법안 일괄 통과에 “더 이상 한국에서 기업할 이유 없다” 자조감 확산
중소·중견기업 52시간 계도기간 종료에 노동 리스크 커지며 해외 이전 적극 검토
코로나19 글로벌 공급망 재편 차원 추진된 리쇼어링 정책 사실상 용도폐기
[헤럴드경제 정순식 기자] 여당이 상법과 공정거래법, 노동관계법 등 규제법안을 일거에 통과시키자 기업들의 탈(脫)코리아가 러시를 이룰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영권 방어 비용와 노사 갈등 비용이 급증하며 한국에서 더이상 기업을 할 이유가 없다는 자조감이 재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가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리쇼어링(해외 진출 공장의 국내 복귀)의 계기로 삼겠다는 목표를 반년 만에 스스로 사장 (死藏)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해외 투기자본의 이사회 진출과 해고자의 노조 가입 등 경영상 부담을 안기는 정책들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됨에 따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경쟁력이 급감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해외 이전 검토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주52시간제의 계도기간 종료로 내년 범법자로까지 몰릴 위기에 처한 중견·중소기업들의 해외 이전 움직임이 한층 거세지는 분위기다.
중견 제조업체 관계자는 “기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져 해외로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여력이 안돼 할 수 없이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라며 “기업의 발목을 잡는 법안들과 정부 규제에 대응할 수 없는 중견,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 생존 위기로 내몰리며 이제는 최후의 결단을 할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자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정부의 정책은 사실상 용도폐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를 기회로 삼아 리쇼어링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온 바 있다.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7월 ‘소재·부품·장비 2.0 전략’을 통해 리쇼어링 정책을 발표하고 유턴 기업들을 위한 각종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유턴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연구개발(R&D) 센터 등 연구시설의 유턴을 가능하게 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도 유턴법을 개정해 비수도권 유턴 기업에 대한 국·공유재산 최장 50년 장기 임대, 임대료 감면, 수의계약 허용 등 특례와 유턴보조금까지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인센티브에도 기업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국내 제조업체 308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해외공장을 가진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복귀 의향을 묻는 질문에 94.4%가 ‘계획 없다’고 답했다. 같은 달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서도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소유한 중소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92%가 리쇼어링 계획이 없었다.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고려 않는 이유에 대해 ‘높은 국내 생산비용’과 ‘현지 내수시장 접근성’, ‘노동, 환경 등 국내 각종 규제’ 등을 이유로 꼽았다.
기업들은 이번에 통과된 상법과 노동관계법, 그리고 내년 통과가 유력시되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의 확대는 이같은 기업들의 한국 기피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특히 강성 노조의 잇따른 파업 등으로 노동 비용이 커진 상황에서 해고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탈코리아를 재촉할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한국의 노동손실일수는 이미 일본의 209배, 독일의 9.7배, 미국의 6.2배, 영국의 2.1배에 달하고 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인건비, 법인세, 각종 규제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몇 가지 인센티브 제공만으로 막대한 자금과 수십년의 청사진이 들어간 해외 생산기지의 국내 회귀를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오히려 노동 리스크 등으로 국내에서 기업체를 운영해야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