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태권도협회 전무이사 아들 소속 고교팀...자세도 발차기도 엉망인데 심판들 우세판정

억울한 심판 판정에 학부모의 자살까지 부른 태권도 겨루기 승부조작 사건에 이어 고등부 단체전 품새 시합에서도 승부조작이 이뤄진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 2013년 7월8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대학에서 열린 ‘전국 추계 한마음태권도 선수권대회’. 이 대회 4강전에는 서울 K고등학교 A팀과 태권도 모임인 C팀의 고등부 품새 단체전 시합이 열렸다. 태권도 품새 시합은 2개 팀이 규정 동작을 시연한 뒤 심판들이 우세한 팀의 깃발을 들어 판정한다.

두 팀은 태권도 품새 ‘금강’으로 승부를 겨뤘다. 이날 경기는 언뜻 보아도 C팀이 우세해 보였다. C팀의 동작은 절도 있고 통일된 반면 A팀은 발차기도 어설펐고 외발로 서는 자세에서 기우뚱거리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지난 2013년 7월 8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대학에서 열린  ‘전국 추계 한마음태권도 선수권대회’ 고교 품새 단체전에서 승부조작에 항의하는 C팀 감독과 심판들이 일제히 붉은 깃발을 들어올리는 장면.
지난 2013년 7월 8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대학에서 열린 ‘전국 추계 한마음태권도 선수권대회’ 고교 품새 단체전에서 승부조작에 항의하는 C팀 감독과 심판들이 일제히 붉은 깃발을 들어올리는 장면.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심판 5명은 전원 붉은 깃발 5개를 들었다. 5대0으로, 승리는 K고 A팀이 거머쥐었다.

경기 결과가 뒤집어진 데는 이른바 윗선의 ‘오더’, 즉 승부조작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회를 관람하던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심판부의장 김모(62) 씨는 바짝 속이 탔다. A팀에 자신과 친한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이사의 아들 김모(19) 군이 속해 있었기 때문.

고교 2학년 때까지 겨루기를 주종목으로 삼은 김 군은 전국대회 입상 실적이 없어 3학년 때 품새로 종목을 바꾼 상태였다. 그러나 김 군은 이날 오전 품새 개인전 경기에서도 패배하고 말았다. 김 씨는 어떻게든 김 군에게 단체전 우승을 안겨주고 싶었다.

이날 오후 1시 단체전 경기가 열리기 직전 김 씨는 또 다른 부의장 전모(61) 씨를 불러 A팀을 잘 봐달라고 지시를 내렸다. 전 씨는 심판 5명을 바로 불러모아 이 ‘오더’를 전달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심판들에게 경기 당일 동영상을 보여주자 이들은 범행을 인정했다. 심판 이모(45)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하려 했는데 동영상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심판 서모(40) 씨는 “지시 받은 사실을 깜박해 상대팀이 잘했다는 청 깃발을 들려 했으나 다른 심판들이 모두 홍 깃발을 드는 바람에 나도 홍 깃발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 씨는 승부조작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김 군의 아버지와 사전 모의하거나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승부조작을 지시한 김 씨와 전 씨를 업무방해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심판 5명은 협회에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협회가 심판 선발권 등 사실상 심판의 ‘밥줄’을 쥐고 있어 승부조작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씨는 학부모 자살을 부른 승부조작 사건에도 가담한 혐의로 이미 입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4강전에서 C팀을 꺾고 결승에 오른 A팀은 공교롭게 같은 학교 B팀을 만났다. 이 학교 3학년으로 이뤄진 A팀은 2학년생인 B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입상성적을 갖고서 A팀 학생 두 명은 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훈 기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