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기회로 바꾼 '역발상'…세계 1위제품 20종
1983년 사재 털어 반도체 사업 진출
일본 제치고 반도체 D램 세계 1위로
매출 34배·시총 350배·자산 70배 '껑충'
삼성의 한국 전체 수출 비중 28.3%
전 세계인 주목하는 초일류 기업 키워
[헤럴드경제 천예선 기자]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했다. 독일과 일본 등지를 순회하면서 임원들을 불러놓고 양떼기 경영을 그만두라고 했다. “양(量)경영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수빈 비서실장의 주장에 격노하며 테이블을 내리치기도 했다. “아직도 내 말을 못알아듣는다”고 호통을 쳤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반전의 승부사였다. 위기 순간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과 강한 집념으로 한국을 세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한 나라로 각인시켰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발판으로 TV와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등 20개 품목을 세계 1위에 올려놨고 대한민국 수출의 30%를 일궈낸 한국 경제의 진정한 ‘선각자’였다.
▶추격자서 선도자로…국격을 끌어올리다=이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1987년은 삼성은 아시아의 변방기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삼성을 이끈 27년간 삼성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이끈 동안 경영성과는 눈부시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9000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 해인 2014년에 318조7634억원을 기록, 348배로 증가했다. 매출은 9조9000억원에서 338조6000억원으로 34배 늘었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000억원으로 70배 넘게 늘어 명실상부 재계 1위를 공고히 했다. 임직원 규모도 10만여명에서 국내외 총합 42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한국 경제 기여도는 막대하다. 수출 규모는 63억달러에서 1567억 달러(2012년 기준)로 25배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에서 28.2%로 배 이상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2013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그룹은 8위에 올랐다. 인터브랜드가 집계한 삼성그룹의 브랜드 자산가치는 당시 396달러(약 40조4712억원)였다.
이 회장이 1987년 12월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당시 밝힌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세계 1위 품목 20종…메모리·애니콜 신화 창조=이 회장 취임 이후 이 회장 취임 후 삼성이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19개에 달한다. TV를 시작으로 메모리, 스마트폰, 등을 세계 1위에 등극시켰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이 회장의 집념의 산물로 평가된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3년이다. 이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반대로 ‘한국반도체’ 인수가 난관에 부딪히자 사재를 털어 사들이며 반도체 사업의 싹을 틔웠다.
반도체 사업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이 회장의 특유의 결단력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지,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당시 회의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처음 시도하는 기술인 스택 공법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자, 이 회장은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는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삼성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중요한 결정이 계기가 됐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4년 4위였던 휴대폰 사업도 1년 뒤 국내 1위에 올려놨다.
삼성의 휴대폰 사업의 대변혁은 1995년 이건희 회장의 작심 결단으로 재도약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선 해머를 든 직원들이 삼성 마크가 붙은 무선전화기 15만점을 모조리 때려부쉈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스마트폰 1위 갤럭시로 이어지는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 강조=이건희 회장은 사회공헌 문화도 선도했다. 그는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또 다른 사명으로 여기고 경영의 한 축으로 삼도록 했다.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맹인 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경영철학은 임직원들에게도 영향을 줘 사매년 연인원 50만명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의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나서고 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