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아드는가 싶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이다. 이제는 이 또한 익숙해진 것일까. 독버섯처럼 번지던 지난겨울 수준의 긴장감에는 못미치는 듯 하다. 아마도 석 달 새 우리의 일상이 크게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는 일상이 됐고, 긴장과 경계는 몸에 체화된 지 오래다.

코로나19는 시대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좀 더 확장하자면 굳건하던 자본주의의 상징인 효율의 가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초유의 위기 속에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던 목소리는 크게 잦아들었다. 아니 오히려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란 목소리가 오히려 더 크게 들린다.

신자유주의 가치는 지난 40여년간 세계를 지배하던 이념이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세계 정치 경제의 주류 사조의 흐름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시장을 견제하고 보완할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었다. 전 세계는 효율의 가치 하에 움직여왔다. 시장과 효율 우선주의에 따른 부작용은 순기능에 가려져 왔다. 이를 뒤흔든 건 반대 진영의 저명한 학자도 치열한 사회운동도 아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바이러스였다.

세계 각국은 무차별 돈 풀기에 한창이다.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번주부터 긴급지난지원금이 주어지고 있다. 늘 그렇듯이 선별과 보편의 이슈는 지급 결정 전 불거졌었다. 하지만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기의 골이 너무 깊어서였다. 모두를 만족시킬 솔로몬의 해법은 애초에 없었다. 비효율을 감수하고 일단 모두에게 주는 방향으로 결정이 났다.

무너지는 기업들을 향한 지원도 비효율의 상징이다. 전염병 또한 기업엔 다양한 리스크 변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되는 게 냉정한 경쟁 사회의 법칙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비효율을 감수하고 기업의 고용 유지에 총력을 쏟는다. 그러면서 기업들을 지배하던 주주자본주의는 크게 힘을 잃었다. 미국의 중장비회사 캐터필러와 청바지 회사 리바이스 등이 직원을 구조조정한 뒤, 주주들에게 배당을 주겠다고 발표하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에 근거한 전 세계 밸류체인의 붕괴 또한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발전시켜온 세계화 속의 분업 질서는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으로 시작된 보호무역 기조에 코로나19가 쐐기타를 가하는 모습이다. 각국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3주년 연설에서 “세계는 이제 값싼 인건비보다 혁신역량과 안심 투자처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며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의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값싼 인건비와 세제 등 효율적인 기업 환경만으로 기업의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인류의 역사에서 위기는 늘 비효율을 불러왔다. 그리고 비효율 존재 이유엔 늘 사람을 우선하는 ‘따뜻한 심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비효율은 인간의 욕망 앞에 또 다른 부패의 시발점이 되곤 했다. 새롭게 열린 이 시대 가치가 신자유주의의 40년 수명을 넘어설 수 있을 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