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문을 연 ‘양주옥정 유림노르웨이숲’ 견본주택에 3일간 1만8000여명이 몰렸습니다.”, “‘e편한세상 금산 센터하임’ 견본주택에 주말 1만2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습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에도 분양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건설사들은 어김없이 방문객 수를 실시간으로 집계해 언론사에 뿌린다. 견본주택에 몰리는 인파의 규모가 청약 성적을 가르는 ‘바로미터’로 여겨져서다.

지난 1월 한 달 청약시장은 강제 휴지기를 거쳐야했다. 청약 담당기관이 금융결제원에서 한국감정원으로 바뀌어 업무 이관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2월 들어 한국감정원 관리 체제에서 새롭게 청약업무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견본주택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방문객이 많이 오지 않는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썰렁한 견본주택은 분양 성적에 치명적이다. 견본주택을 열 것이냐? 미룰 것이냐? 사이버모델하우스로 대체할 것이나? 봄 분양 성수기가 시작되는 요즘 건설사들의 최대 고민이다.

견본주택을 통해 주택을 분양하는 건 ‘선분양’이 가능한 우리나라 주택공급 체제 때문이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주택을 팔기 위해 견본으로 미리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견본주택이 처음 등장한 건 1968년 서울 동부이촌동 ‘한강맨션’부터다. 그때까지 아파트는 철거촌 거주자를 위한 열악한 주거시설로 여겨졌다. 당시 주택공사(현 LH)는 기존 상식을 깬 중산층을 위한 고급 아파트로 한강맨션을 계획했다. 문제는 기존 아파트의 이미지를 깨는 데 있었다. 주공은 견본주택을 지어 직접 보여주는 방법을 고안했다. 당시 목조와 합판으로 1층 연면적 140㎡ 규모의 견본주택을 선보였다. 견본주택 기공식에는 당시 국무총리까지 참여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후 남산외인(1969년), 한간민영(1971년), 여의도시범(1971년) 아파트 등에서 잇따라 견본주택이 지어졌고, ‘돈 많은’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견본주택을 통해 아파트를 분양받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0년대부터 견본주택 내부엔 실제 지어질 주택 실내를 똑같이 보여주는 유니트가 등장했다. 70년대까진 모형도와 평면도, 현황판 등을 통해 주거유형을 설명하거나 건축자재를 전시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때부터는 현재 우리가 봐온 견본주택과 비슷한 모습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급등하는 분양가를 규제하기 위해 시작한 ‘분양가상한제’는 견본주택의 파워를 확인하는 시험대가 됐다. 1989년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자 건설사들은 견본주택에 ‘기본형’, ‘옵션형’ 두 가지 유니트를 전시했다. 기본형은 거의 아무런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채로, 옵션형은 최고급 내장재와 인테리어를 적용한 형태로 전시했다. 사람들은 소위 ‘깡통 아파트’라 불리는 기본형보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옵션을 적용한 옵션형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1기 신도시가 본격적으로 분양한 1990년대부터는 견본주택이 화려해졌다. 분양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건설사들의 마케팅 경쟁이 치열했다. 유니트 내부엔 최첨단 전자제품, 최고급 가구와 건축 내장재가 들어갔다. 견본주택을 ‘분양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시대가 도래했다.

2000년대 들어 견본주택은 더욱 화려해졌다. 단순 분양 홍보 공간에서 자사의 주택 상품을 일상적으로 전시하는 갤러리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했다. 2004년1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신설되면서 모델하우스, 본보기집, 견본주택 등으로 쓰이던 명칭이 법적으로 ‘견본주택’으로 정리됐다.

2006년엔 ‘사이버모델하우스’가 처음 등장한다. 정부는 2기 신도시 등을 분양할 때, 밤샘 줄서기, 주변 교통난 등의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는 2006년 4월 판교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처음으로 인터넷 청약과 사이버모델하우스를 도입했다. 당시 주공 홈페이지 등에서 운영된 사이버모델하우스 접속자는 하루 평균 62만명, 누적 방문객 1570만명을 기록했고, 최종 47만명이 청약해 207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이버모델하우스가 있다고 건설사들이 견본주택을 짓지 않는 건 아니다. 당첨자들을 상대로 견본주택을 보여줘 최종 계약에 참고하도록 한다.

견본주택은 출발부터 현재까지 실제 지어진 아파트와 다르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주택법으로 ‘견본주택의 내부에 사용하는 마감자재 및 가구는 사업계획승인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 시공·설치하여야 한다’는 등의 규정을 만들어 규제하고 있다.

박일한 건설부동산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