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조차 전통한지를 쓰지 않았다. 대부분 동남아산 수입닥 이거나 닥·펄프 혼합 종이였다.” 우리나라 전통한지의 현주소다.
빛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전통한지도 그 중 하나다. ‘전통한지’ 그 제조기법의 근원을 찾아낸 4인이 있다. 수묵화가 김호석, 국가기록원 박후근 서기관, 닥나무 연구 국내 최고전문가인 국립수목원 정재민 박사, 한지산업지원센터 임현아 실장이 그들 이다.
‘한국의 전통한지’는 이들이 2016년 1월부터 4년간 ‘기록용 한지 연구모임’ 통해 이뤄낸 값진 결과물이다. 문헌연구와 현장답사 그리고 한지장인 인터뷰 등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이들은 닥나무 품종 연구를 위해 경북 의성·안동, 전북 완주 위보산 등을 현지 답사했다. 2017년 9월에는 신안 가거도, 2018년 8월에는 군산 선유도까지 찾았다. 원주·안동 등 전국 21곳 전통한지 업체를 방문, 사용 재료, 제조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판매처도 조사했다.
이들은 현장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닥나무가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의 자연교잡에 의한 잡종이라는 사실을 형태적 및 분자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확인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의 최고의 한지도 잡종 닥나무에서 생산됐다. 그 후 열성유전처럼 닥나무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닥나무라도 현대의 닥나무로는 조선시대 수준의 한지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우수한 닥나무 품종을 육종하면 조선시대 수준의 한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길을 연 것이다.
이들은 일점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전통한지 제조기법을 거의 찾아 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지의 표면처리 기법(도침)이다. 먹물이 균질하게 흡수되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전통문화의 원형을 찾아내고, 현대적 감각을 덧붙여 ‘19가지 도침 과정’을 첫 공개했다.
김호석 화가는 이 도침기술의 국내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 기법은 2015년부터 행정안전부가 시행하고 있는 국가훈·포장용 한지에도 적용됐다.
한지는 한국에서 생산된 닥나무 껍질인 인피섬유를 원료로 전통적인 외발뜨기와 장판뜨기 방식으로 생산된 종이다.
전통한지가 세계화 되기 위해서는 한지의 품질측정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종이의 품질시스템은 양지 기준이라는 것이다. 한지 측정 기준이 있어야 품질을 계량화, 한지장인들의 수준을 높일 수 있고,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보다 한지가 우수함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현재 손으로 뜨는 전통방식의 한지업체는 21곳이다. 1996년 64곳에서 크게 줄었다. 그나마 상당수 업체는 연 매출 1억 미만이다.
보존성이 뛰어난 전통한지 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판로가 마련돼야 한다. 우선 정부부터 기준을 마련해 한지진흥을 위한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정부 부문 중요기록물 및 문화재에 한지사용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문화재 수리·복원에 사용되는 한지의 품질기준을 표준화 하라고 주문한다.
중국 전통종이인 선지(宣紙)는 당나라때 생산되기 시작, 천년의 수명을 지닌 종이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선지는 2006년 중국국가급 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선정됐고, 2009년에는 일본 화지에 앞서 유네스코에 등재,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한지는 아직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했다. 한지의 미래는 이제 시작이다.
이 책은 전통한지 제작과정을 사진을 곁들여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한지장인들의 명단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김능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