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신라 제48대 임금 경문왕은 귀가 당나귀처럼 길었다. 왕관 속에 귀를 숨겨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였지만,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은 알 수밖에 없었다. 평생 비밀을 지키던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 복두장이 평생 비밀을 지킨 이유는 비록 사실일지라도 임금님의 귀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처벌이 두려워 비록 사실일지라도 말하지 못하는 것은 신라시대뿐만 아니라 현재도 똑같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나 각종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이들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되어 형사처벌의 위험에 놓인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폐지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사생활의 공개로 인하여 타인의 기본권이 침해될 위험성이 적지 않고, 우리나라에는 아직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이 형벌을 대체할 유효적절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면에서 아직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위 규정이 가해자측이나 제3자가 피해사실이나 피해자의 신상정보, 과거 행실 등에 관해 사실에 기반한 내용으로 2차 피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면이 있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도 할 수 있는 자유’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받으면 사실을 적시해도 처벌을 면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다.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률은 개정되어야 한다. 인권 보호의 출발은 익숙한 것을 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가짜뉴스처럼 명백하게 허위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당연히 규제되어야 하지만,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민사상 손해배상의 영역이지 국가의 형벌권으로 해결할 영역이 아니다.
한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폐와 관련된 논의에 있어서 오늘날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네티즌끼리 언어를 매체로 시간과 공간의 개념 없이 정보가 무한하게 퍼져나간다. 가령, 에이즈와 같은 병력, 전과사실 등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이 인터넷이나 SNS 등 정보통신망을 통해 알려질 경우, 전파 속도와 범위는 광범위한 반면 이미 알려진 정보는 회수할 수 없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존치론, 폐지론 어느 입장에 서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전파가능성과 피해의 양상을 고려하여 다양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최소한 처벌의 위험 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