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세대 임현진 다익인터내셔널 대표의 이유있는 변신… ‘삼각티백’ 국내시장 개척… 이마트 손잡고 ‘믿고 마실 수 있는 좋은 차’ 보급
“제 인생에서 차(茶)란 바쁜 1막을 끝낸 저에게 지금의 2막을 열어준 키(Key) 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차 문화’는 상당히 생소한 분야였다.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커피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때라 차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있어 차는 기껏해야 종이 티백에 들어 있는 녹차나 둥글레차 정도로 인식하던 때였다.
임현진 다익인터내셔널 대표는 차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2003년부터 차 사업을 시작, 지금은 고품질의 차를 대중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찻잎을 밸런스가 좋도록 섞거나 향을 입히는 ‘블렌딩 차’의 저변을 넓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 그를 헤럴드경제가 이달 초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만났다.
▶벤처 1세대…위기의 순간 운명처럼 만난 차(茶)= 사실 그는 차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거나 타고난 감각으로 일가견이 있던 사람은 아니다. 1990년대에는 마시는 차(茶)보다 달리는 차(車)를 잘 아는 ‘차 전문가’였다. 학교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이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기계였고, 그 회사에서 ‘스핀오프’(spin-offㆍ분리)된 벤처회사인 만도맵앤소프트(현 현대엠앤소프트)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안철수, 이재웅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벤처 1세대인 셈이다.
임 대표는 “16년여 전만 해도 마시는 차보다는 달리는 차를 더 잘 아는 사람이었다”며 “차를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차 만들던 사람이 차 사업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차’(車)에 미쳐 살던 그가 ‘차’(茶)를 만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였다. 일주일에 3일은 밤을 새면서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급기야 사무실에 불이 났다. 일하느라 오래 켜둔 컴퓨터 모니터가 터져버린 것이다. 당시 14명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거나 일 할 수 있는 다른 장소로 옮겼고, 임 대표도 근처 친구 회사에 염치 불구하고 며칠 간 신세를 졌다. 당시 친구가 바이어와 차를 마시다가 구석에서 일하고 있던 자신에게도 차를 권해 처음으로 차를 접하게 됐다.
그는 “당시 바이어 중 한 분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버냐’라고 묻기에 ‘돈을 많이 벌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네 몸은?’이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당시 그분들과 같이 마셨던 차가 세작급 녹차와 보이차, 철관음 등 중국차였는데, 그때 차의 세계로 입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벤처정신으로 ‘삼각 티백’ 사업 시작= 급기야 동고동락했던 연구원 두 사람이 과로 등의 이유로 죽었다. 힘들어 그만둔 모 박사는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고, 다른 한 명은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백혈병에 걸렸다. 임 대표도 당시 특별한 질환만 없었을 뿐 몸무게가 60㎏까지 빠지는 등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이에 그도 동료들처럼 건강 이상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다보니 어린 아이들이 아빠를 못 알아보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그는 “회사 이름부터 CI(기업 로고)까지 모두 만든 자식 같은 회사였지만,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조건으로 미련없이 회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고 말했다.
30대 중반까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임 대표는 벤처 사업을 그만둔 후 좀 쉬고 싶었다. ‘힐링 여행’을 통해 본인을 되돌아 보고 싶었던 것. 당시 가까운 중국, 일본, 대만, 스리랑카는 물론 미국 등 먼 나라까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방문했던 국가들이 대부분 차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차 패키지에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는 삼각형 모양의 티백이 눈에 띄었다.
임 대표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종이 티백밖에 없던 때라 ‘삼각 티백’을 국내에 들여오면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차 사업을 이미 시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단가가 비싸서 사업성이 없다’고 하더라. 남들이 안된다고 하니 괜히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벤처 정신’으로 국내에 삼각 티백 기계를 들여왔다”고 회상했다.
▶좋은 차 알리려 이마트 문 ‘똑똑’= 사업이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1년간 십 수군데의 회사를 찾았지만, 아무도 삼각 티백 기계를 사지 않았다. 단가가 높은데다 써 본적도 없다 보니 기계 구매를 꺼렸던 것이다. 그나마 희망을찾은 것은 차 사업을 확대하던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이 기계를 사는 대신, 삼각 티백을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주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임 대표는 “주문을 받고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들과 삼각 티백 안에 차를 몇 그램을 넣고, 몇 분을 우려내는 게 좋은지 등 수도 없이 해보며 연구를 했다. 아모레에서 생산을 시작하니 티 메이커들이 삼각 티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제품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업체가 늘었다. 그때 먹어본 차 종류만 따져보면 2000가지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각 티백’이라는 패키징으로 차 사업을 시작한 그는 직접 좋은 차를 수입하고, 더 나아가 국내에서 차를 생산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차 생산도 OEM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제임스 스푼’(JAMES SPOON)이라는 자체 브랜드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회사 내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차 수출입과 유통 업무만 떼어 ‘올푸드글로벌’이라는 회사를 따로 설립했을 정도다. 하지만 판매망이나 유통채널이 작다 보니 좋은 차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60㎏으로 비쩍 말랐던 제가 차를 마신 후 70㎏대 중반의 건강한 몸이 됐다는 건 이미 임상 실험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들에게도 좋은 차의 효능을 널리 알리고 싶지만, 중소기업으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게 한계가 있었다”면서 “고심 끝에 국내에서 유통채널이 가장 큰 이마트에 먼저 제품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후 임 대표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이마트 피코크와 노브랜드로 각각 10종과 3종의 커피 및 상품을 론칭했다. 특히 노브랜드 제품인 드립백 원두커피와 히비스커스 허브티, 애플시나몬홍차 등은 판매 상위 10품목에 모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회사는 이마트에서 성공을 계기로 자동화 라인을 갖추고,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소품종 다량생산’으로 생산 체계를 업그레이드했다. 이마트 역시 중소기업과 상생 케이스로 다익인터내셔널과의 협업을 꼽을 정도로 ‘윈윈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안심하고 마시는 차 만드는 게 목표= 임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재료 하나로 만드는 ‘싱글 티’ 제품을 넘어 이제는 찻잎을 섞거나 향을 입히는 ‘블렌딩 티’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차뿐만 아니라 홈카페 트렌드에 따라 드립백 제품을 출시, 커피 시장에도 출사표를 내놓은 상태다. 지난 2017년 노브랜드로 내놓은 콜롬비아 드립백 원두커피는 지난해 노브랜드 전문점에서만 6만5000개가 팔리며 커피차 품목에서 2위의 판매기록을 올렸다. 덕분에 주로 차에서 나왔던 매출이 이제는 커피가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거래선 역시 이마트 뿐 아니라 호텔, 카페 프랜차이즈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숙원 사업이었던 해외 수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노브랜드로 생산했던 차류 3종을 러시아 슈퍼체인에 테스트 판매를 위한 1차 공급을 준비 중이다. 이르면 내달 중에 슈퍼체인에서 다익인터내셔널의 노브랜드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 지난해 11월에 열린 서울 카페쇼에서 ‘제임스 티스푼 삼각 티백’ 제품에 대한 미국 수출도 의뢰받은 상황이다. 이처럼 사업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임 대표가 세운 목표는 단순했다. 바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회사 외형이 확대되더라도 식품회사로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임 대표의 소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차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좋은나라운동본부’라는 예능을 보면서 ‘아빠 회사는 저렇게 안 하지?’라고 묻더라. 그때 처음으로 회사의 목적이나 비전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면서 “회사를 키우는 것보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좋은 차를 만든다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c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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