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생산 30년 경과 외교문서 공개 -KAL858 최후교신 이틀 뒤 2차 회의 첫 의제 “정부노력 부각” -보상ㆍ국민 유감표시 의제 4, 5순위 밀려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전두환 정권이 지난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수습과정에서 보상문제나 국민에 대한 유감 표시는 후순위로 인식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나왔다.
외교부가 31일 공개한 외교문서 원문에 따르면 정부는 87년 12월 1일 외무부(지금의 외교부)에서 ‘KAL기 실종사고 비상대책본부 2차회의’를 열었다. 회의엔 박형주 내무부 치안본부 5차장ㆍ교통부 유직형 항공국장ㆍ우 성 노동부 직업안전국장ㆍ문공부 홍보기획실장과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ㆍ지금의 국가정보원) 제3국장 등 5명이 참석했다. 안기부와 문공부 관계자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회의자료 본문 첫머리엔 ‘사건조사 진전사항’으로 태국 정부 조사단의 수색활동을 먼저 적고 있다. 사건 당시 KAL858기는 87년 11월 29일 태국 방콕과 마지막 교신을 했다.
자료에 따르면 최후교신 하루가 지난 11월 30일 방콕 칸타나부리주 사이요크(Sai Yok) 군 주민들이 비행기 폭음을 들었다고 제보했다. 이어 태국 당국은 군ㆍ경찰ㆍ주정부 합동으로 헬기 및 경비행기를 동원해 비행기 잔해 수색작업을 세 차례 전개했다. 그러나 짙은 안개로 인해 현장 시계가 불량했다고 문서는 기록했다. 같은날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회장도 자동차편으로 추락 예상지역에 도착했다. 이튼날에도 해당 지역에서 수색이 계속 진행됐는지는 불분명하다. “12월 1일 수색작업 계속 예정이나, 추락사실 여부 불투명”이라고 자료엔 적혀있다.
이어 자료엔 외무부 제2파관보를 단장으로 한 정부 파견 특별조사단 활동도 기록돼 있다. 조사단은 11월 30일 태국 당국자들을 면담한 뒤 “12월 1일, 태국 정부당국의 적극적 수색협조 요청 예정”이라고 썼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이 회의의 첫번 째 의제는 ‘정부대책본부 발표 문제’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및 정부의 노력을 부각시키는 내용을 대책본부장 명의로 중간발표”라고 기록했다. 사건 발생 후 72시간도 안 된 시점에 작성된 문건이란 점이 중요하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가장 주안점을 두어야 할 KAL858기 승객의 행방 또는 안전문제보다 ‘정부 관료의 노력’을 더 강조해 중간발표할 계획이었던 셈이다. 뒤이어 표기된 두번 째 의제는 ‘신원특이자와 테러리스트 개입문제’였다. 세번 째 의제역시 ‘현지조사반 활동 부각방안’으로 적혀있다. 보상문제ㆍ국민에대한 유감 표시는 각각 넷째와 다섯번 째 의제로 밀려나 있다.
실제 87년 12월 1일 오후 4시 대외적으로 공표된 ‘대한항공 실종사고 정부 실무대책본부 발표문’ 은 사건 수습을 위해 구성된 정부 부처들이 수색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방콕 현지에서 활동 중인 특별조사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해 작성돼 있다.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KAL858기의 최후교신 이틀 뒤인 1일까지도 사고 원인은 폭파가 아닌 추락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외교부는 31일 생산 30년이 지난 1988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합계 1602권, 약 25만 페이지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문서엔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남극기지 설치 ▷1978 한·일 대륙붕 협정 등이 포함돼 있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 문서공개목록 및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외교사료관 홈페이지와 모바일로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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