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한미관계 다층구조 강조 오랜 외교관 경험, 통일 인재양성에 접목 “남북관계 해소는 北비핵화가 가장 중요” “차 한잔하실까요? 같이 가시죠. 여기는 셀프입니다”
와룡산이 빨강노랑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가을 오후, 서울 북촌에 자리한 북한대학원대학교(이하 북대) 총장실에서 만난 안호영 총장의 첫인사를 듣는 순간 ‘걸어 다니는 바른생활’, ‘텍스트북’이라는 그의 별명이 곧바로 머리를 스쳤다.
총장실로 들어가기 전 거쳐야할 커다란 비서실도 없었고, 총장실이라고 하면 으레 연상되는 고급스런 가구나 화려한 장식도 없었다.
복도 끝 방까지 가서 직접 차를 타 마시는 모습에서는 오랜 외교관 생활에서 몸에 밴 듯한 젠틀함과 함께 소탈함이 묻어났다.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이듬해 외무부에 입부한 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과 1차관 등을 역임하고 2017년 주한미국대사를 끝으로 외교관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9월 제7대 북대 총장에 취임해 교육자이자 대학경영자로서 인생 2막을 새롭게 써내려가는 중이다.
안 총장은 40여년간 외교관으로서 쌓은 경험과 경륜을 남북교류ㆍ협력, 통일에 대비한 전문인력과 후학 양성에 접목시키는 데 공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의 세 가지 보물 교수, 학생, 아카이브”=“북대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더군요”
대학총장으로서 향후 운영구상을 묻는 질문에 안 총장은 학교 자랑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꼽은 보물은 교수진이었다.
안 총장은 “첫째 보물은 교수님들입니다. 한분 한분 만나 얘기해보니 모두들 북한 연구와 관련해 개인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었어요. 각자의 분야에서 몇십년씩 연구한 분들인데, 이런 분들을 한군데 모은 조직은 없잖아요”
이어 그는 다방면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뒤 새롭게 북한학 공부에 뛰어든 학생을 들었다.
안 총장은 “둘째 보물은 학생입니다. 여기 학생들은 공무원, 군인, 기자, 그리고 변호사, 금융인, 의사 등 전문직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나름 사회생활을 오래하고 자기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북한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인데 동기부여가 강해 수업을 굉장히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뽑은 보물은 북한 자료의 축적, 아카이브였다. 그는 “북한 연구는 자료 축적이 굉장히 어렵고, 그나마 부족한 자료를 연구자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게 일이더군요. 북대에서 오랫동안 그 일을 해왔는데 연구자들은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하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본인들의 동기를 잘 달성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아카이브는 아카이브대로 더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합니다”고 말했다.
▶40여년의 외교인생, 세 번의 선택=안 총장은 우리 현대 외교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외교관이다. 그는 40여년의 외교관시절을 돌이키면서 역시 세 번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외교관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첫 번째 선택이었다. 그는 “우리 때는 졸업하면 바로 직업을 가질 수 있었는데 외교관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결과적으로 가장 큰 선택이었다”며 “당시 선택의 폭이 넓었는데 무언가 좀 보람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보람이 있으려면 잘하는 일이어야겠고, 외교관을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선택은 통상이었다. 그는 “조약과장 시절 우루과이 라운드가 막바지였는데 통상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깨닫게 됐다. 그래서 통상과장을 하게 됐는데 그게 또 다른 갈림길에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이후 외교통상부 다자통상국장과 통상교섭조정관,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등을 맡아 주요한 통상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최일선에서 뛰었다. 그에게 ‘통상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붙게된 배경이다.
세 번째 갈림길은 2011년 벨기에ㆍ유럽연합(EU) 대사를 맡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기왕 통상 일을 오래했으니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EU대사로 나가게 됐다. EU대사는 벨기에와 양자, EU대표부와 다자,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업무까지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정무 쪽 일을 하게 됐고 나중에 차관, 주미대사로 가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안 총장이 외교관으로서 승승장구하기까지 사실상 공인에 준하는 역할을 하며 뒷받침한 이선화 여사의 내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16년 주미대사시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 여사가 천막과 대형스크린을 준비해 1500여명이 참석한 행사를 말끔하게 치른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안 총장은 “외교관에게 부인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재외공관에서 일주일에 관저행사만 세네 번 있는데 저 같은 경우 행사 전까지 따로 점검해본 적이 없어요. 전적으로 와이프를 믿으니깐, 와이프가 한번 봤으면 내가 다시 볼 필요가 없으니깐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미관계 ‘다층구조 돼야”= 안 총장은 한미 관계에 대해 ‘멀티 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총장은 주미대사로 부임했을 때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때 생각한 것이 한미관계는 멀티 레이어 케이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한미관계의 시작에 대해 “처음 (한미관계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받기만하는 관계로 시작했다. 받기만 하는 일방적 안보관계로 시작했는데 1978년에 외교부 북미과에 들어갔더니 같은 과 선배들은 ‘한미관계는 싱글이슈관계’라고 했다. 싱글이슈라면 안보가 시작과 끝이란 얘기였다”며 “싱글이슈 관계라면 이는 굉장히 취약한 관계라는 그런 애기를 (선배들이) 했었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그러나 “제 스스로 가만 보니까 ‘너무 속단할 일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칼라 텔레비전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반덤핑을 맞았던 시기가 1984년이었다. 이는 한미 간 통상관계가 상당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안 총장은 “당시엔 슈퍼301조를 조사한다고 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서 시작했는데 (한미간) 통상관계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결국 한미관계는 멀티 레이어 관계로 발전해왔는데 이 케이크를 맛있게 만들고 레이어를 많이 만들고 해야 관계가 굳건해진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 노력을 좀 했었다”고 강조했다.
안 총장은 이어 현재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 “비핵화 문제에 접점이 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해소될 수 없는 시점에 와있다. 접점이라는 것은 강 장관이 BBC TV 에서 자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북한 비핵화가 코리아 이슈뿐 아니라 글로벌 이슈라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겠다. 지금은 비핵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지금 이 시점 뿐만 아니라 1992년 이후 계속 그 상황이 반복됐다. 국제사회는 한반도 문제라고 하면 북핵문제로 본다”고 진단했다.
신대원ㆍ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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