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위안부 논쟁-①] ‘정치화’는 쉬웠지만 ‘해결’하려니…위안부TF 딜레마 [끝없는 위안부 논쟁-②] 누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있나
-피해자보다도 동상이 더 이슈 되는 아이러니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기억...한일간 인식차 반영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또다시 소녀상이다. 2015년 12월 28일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가 발표됐을 당시에도 논란은 일본 정부의 사죄표명 및 10억 엔 갹출이 아닌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우리 정부입장에서 촉발됐다.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이하 위안부 TF)가 밝힌 한ㆍ일 정부의 ‘이면합의’도 소녀상에 대한 후속조치 문제에 대한 건이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사죄표명’에서 보상방법 등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을 겪었던 한ㆍ일 ‘위안부 문제 외교’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소녀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 양상으로 변화했다.
▶담화에서 합의까지…한ㆍ일 위안부 문제 갈등 20년= 위안부 문제는 고(故) 김학순 여사의 증언으로 본격 쟁점화됐다. 고 김 여사의 증언과 도쿄지방재판소에 보상청구 소송으로 피해자들의 집결했으며, 일본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본격화됐다. 특히요시미 요시아키 쥬오대학교 교수는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에 보존돼 있던 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발견해 1992년 방한 직전에 있던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사죄’를 이끌어냈다. 이후 발표된 것이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8월 고노담화이다.
피해자들은 △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 △ 개인 배상 △ 역사교과서 명시 등의 요구를 하기 시작했으나, 이는 관철되지 못했다. 이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 정부가 전후 50주년을 기념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시키자,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수령자와 비수령자로 나뉘어 분열됐고, 우리 정부는 반발했다. 그 결과 60명이 위로금을 수령하는 데 그쳤다.
이후 위안부 문제는 노태우-김대중-김영삼 정권 때까지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고수됐다가 2005년 노무현 정부 들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배상 책임은 끝나지 않은 법적 문제’로 분류됐다. 한ㆍ일 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외교갈등은 이후 지속됐으며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ㆍ일관계를 정상화하지 않느다’는 이른바 ‘원트랙’외교를 펼치면서 위안부 문제는 역대 최고치로 쟁점화됐다.
하지만 한ㆍ일 갈등이 한ㆍ미ㆍ일 3국 협력구도에도 영향을 끼치자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TF 보고서에 따르면 한ㆍ미ㆍ일 협력에 어려움이 생기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동시 압박, 한ㆍ일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했다. 그 결과, 한ㆍ일 수교 50주년이자 전후 70년을 맞이한 2015년 12월 한ㆍ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소녀상, 왜 문제가 되고 있나= 위안부 합의를 위한 한ㆍ일 외교 교섭이 시작된 시점부터 일본은 소녀상 문제에 지속 관심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제안됐다던 이른바 ‘사사에안’에서조차 일본은 주한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의 철거를 촉구했다.
소녀상 이전은 일본정부가 집착해 온 요구사항이다. 위안부문제를 주도해 온 정대협은 수요집회 1천회를 맞이하여 2011년 12월 시민모금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했다. 일본대사관뿐만 아니라, 미국 글렌데일시에 추가로 설치하였고, 호주와 독일 도시에도 추진해왔다. 소녀상과 기림비가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자, 일본 외무성과 현지 일본인단체는 적극적으로 설치반대 운동을 벌이고 나섰다. 소녀상이 일본의 명예를 부당하게 추락시키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들보다는 소녀상 자체가 이슈가 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녀상 이전’ 자체가 ‘일본의 전쟁범죄 불인정’으로 도식화돼버린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에게 있어 소녀상은 국제사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이를 기억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나 일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반일의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치부를 들춰냄으로써 일본을 ‘범죄자’화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소녀상과 관련해 ‘본질’인 위안부 피해에 주목하지 않고 ‘반일의 상징물’이라고 정치화하고, 이를 한국의 ‘대일 공격성’이라 선전했다. 아울러 비엔나 협약 22조를 들어 각국 정부가 외국공관의 안녕을 방해하거나 품위손상을 방지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책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소녀상의 이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도쿄 시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다면, 서울과 부산 일본공관 앞 소녀상은 자진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 소녀상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과거 자행했던 전쟁범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전문가들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소녀상 문제를 합의의 본질인 것처럼 얘기한 일본의 1차적 접근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음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피해자의 존엄회복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면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들 모두 소녀상의 본질을 부각시킬 수 있는 위치 논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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