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전문위원 위촉, 강제 사항 아냐…전문성 부족 의문 -유사사건도 사안마다 처분 달라…신뢰도 하락에 재심청구↑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면 공정한 처분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학폭위 학부모위원은 교감선생님 눈치 보느라 바쁘더군요.”

올해 초 사이버폭력으로 중학생 딸을 잃은 김모(59) 씨는 생전 딸이 다녔던 서울지역 A 중학교 학폭위에 참석했지만 상처만 받았다. 학폭위에서 가해학생에 대해 어떤 처벌을 내릴 지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반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회의록을 보니 학부모 위원들은 사건에 대해 몇 마디 하지 않았고, 교감 선생님만 “가해학생은 교화가 우선”이라고 계속 주장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 위원들은 “동의합니다”라고 덧붙인 게 다였다. 사건의 사실 관계가 조사되거나 논의되지도 않았다는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딸과 같은 피해자가 다신 나오지 않기 위해서 참여한 것이지만 학폭위는 하나마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20일 학교 현장에선 연이은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학교폭력 문제를 1차적으로 다루는 ‘학폭위’가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학폭위는 학부모ㆍ교사ㆍ전문위원(변호사ㆍ경찰 등) 등이 참여해 가해학생 징계와 학생 간 분정을 조정하는 기구다. 지난 2014년 시행된 ‘학교폭력 예방ㆍ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선학교에선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학폭위에서 이를 심의하게 돼 있다. 전국의 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린 건수는 2014년 1만9521건에서 2015년 1만9968건, 2016년에는 2만3673건으로 증가 추세다.

문제는 학폭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학폭위의 위원들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학폭법 제13조 제1항에 따르면 학폭위는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이중 과반수는 학부모 대표가 맡도록 돼 있다. ‘학부모 위원 과반수’는 필수 사항이지만 외부전문위원 위촉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공정한 처분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민병은 민행정사무소 소장은 “학폭위에서 교감선생님이나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학부모 위원들이 많다”며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계속 보내야 할 학교인데 교감선생님이 어떤 주장을 하면 반대한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위원들의 경우 학폭 관련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처분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는 게 민 소장의 설명이다. 민 소장은 “학폭위가 30분만에 끝나는가 하면 비슷한 사건인데도 학폭위에 참가한 학부모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도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에 따라 교육 당국도 학폭위 처분 결과의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교육부는 학교가 학폭위를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 기준’을 마련해 점수를 매길 수 있도록 했다. 학폭위원들은 학교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의 정도, 화해의 정도를 0점부터 4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점수에 따라서 처분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1~3점까지는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4~6점은 학교에서의 봉사 처분이 내려진다. 가장 높은 점수인 16~20점을 받으면 퇴학처분이다. 이외에도 부가적 판단 요소로 해당조치로 인한 가해학생의 선도가능성, 피해학생의 장애학생인지 여부 등을 평가해 반영한다.

그러나 관련 문항을 세부적으로 나눴다고 해서 위원들이 공정하게 처분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올해 춘천의 한 학교 학폭위에서는 미리 처벌정도를 정해놓고서 거꾸로 그에 맞게 점수를 매기는 일도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폭위의 처분에 대한 신뢰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피해ㆍ가해 학생 측이 재심 청구한 건수는 지난해 1299건에 이른다. 학폭위 처분과 관련한 행정소송 건수도 지난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학폭위 전문위원의 비중을 높이고 학부모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사출신인 이보람 변호사는 “위원들이 학교폭력의 고의성, 심각성, 지속성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비전문가가 하기엔 쉽지 않다”며 “학폭위가 학교폭력 사건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에 관련 법령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더욱 확대되고 전문가 비중이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