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모르겠다’ 대충대충 찍어 지나치게 단순한 조사 문항 탓도
“귀찮죠. 공부할 것도 많은데…. 한명이라도 안하면 단체 청소시킨다고 해서 냈어요.” (서울 종로구 중학교 2학년 최모군)
“그거 다 가짜예요. 가짜. 솔직하게 말했다가 다 불러낼걸요? ” (서울 동대문구 중학교 1학년 이모양)
전국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대상으로 ‘2017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지난 18일부터 시작한 실태조사는 다음달 27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상당수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실효성도 없는 귀찮은 일’로 인식되고 있었다.
▶ “없다, 없다, 없다”, 1분이면 끝=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1분’이면 끝나는 일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폭력 가해, 피해 여부를 묻는 문항에 모두 ‘없다’만 누르고 서술문항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쓰면 된다고 했다. 한 중학생은 “친구들이 다 대충하는데 혼자 오래 붙잡고 있으면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힌다”고 털어놨다.
실태조사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중인 초등학교 6학년 김모(12)양은 “어차피 (실태조사를) 해도 달라지지 않을텐에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실태조사를 학생들이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조사 문항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실태조사 문항을 보면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 괴롭힌 적 있나요?” 등 단편적인 사례를 묻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일괄적으로 ‘없다’라고 답하기 쉬운 구조인 셈이다.
▶ 95% 응답률의 비밀= 학생들은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학교나 담임선생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를 완료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학교에서 혼나기 때문에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 처음 시작한 학교폭력실태조사는 응답률이 95%에 달한다. 그러나 학교에선 높은 응답률을 보이기 위한 한바탕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이 실태조사를 할 때까지 독촉 문자를 보내는 것은 다반사였고 꼭 해오겠다는 각서를 받기도 했다.
실태조사는 온라인 설문조사가 원칙이지만 학교에서 실태조사를 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집에서 조사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을 쪼개 컴퓨터실에 가서 일괄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게 하거나, 수업 중에 교실 한 켠에 교사의 노트북을 놓고 한명씩 실태조사를 시키도 한다. 그래도 하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전화로 조사 문항을 불러주고 대답하게 하는 일도 있다.
교사들은 억지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폭력실태조사 응답률을 높여야 한다는 학교의 지침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 초등학교의 교사 김모(29ㆍ여)씨는 “학년부장이 우리반만 응답률이 50%가 안된다고 계속 빨리 완료하라고 메시지를 보낸다”며 “학생들은 제대로 안 해오고 교사들만 스트레스”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는 학교폭력실태조사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먼저 조사 문항이 보다 구체화되고 아이들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윤호 동국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벌어질만한 특정한 상황을 묘사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뒤 대답하게 하는 등 설문방식을 보안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세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