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1. 경영 컨설팅 기업을 창업한 A 씨는 최근 정부산하 공공기관의 학술연구용역 과제 입찰 과정에서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한 공공기관의 입찰공고에 “재무제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문구가 버젓이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용역 수행기관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경우는 있지만,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는 찾기 어려워진 ‘악습(惡習)’이다. A 씨는 “이제 막 첫걸을 뗀 창업기업에 최근 3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느냐”며 “공공기관 조차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 또 다른 경영 컨설팅 기업을 운영 중인 B 씨 역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공공기관이 학술연구용역 입찰 과정에서 ‘컨소시엄 구성을 통한 과제수행’을 유독 강조하기에 평소 친분이 있던 유명 대학 C 교수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는데, “사실 해당 연구는 (C 교수) 본인을 비롯한 일부 대학 연구소가 이미 오래전부터 협력 수행 중이다. 다른 업체가 과제를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B 씨는 “사실상 공공기관이 과제 낙찰자를 내정한 상태에서 보여주기 식으로 입찰공고를 올리는 것 아니냐”며 “입찰 준비를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은 누가 보상하느냐. 공공연한 불공정거래”라고 비판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학술연구용역 공공구매제도 운영 행태가 창업·중소기업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공공구매 제도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비롯 지방자치단체 투자기관 등이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가운데 학술연구용역은 계약규모가 1억원 이하인 경우 소기업에, 1억원 이상~2억 1000만원 이하인 경우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행한 소기업 확인서 등을 통해 기업규모만 입증하면, 비슷한 덩치의 기업들과만 제한된 상황에서 기술력을 경쟁해 과제를 낙찰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일부 공공기관이 과제 수행능력 평가기준 중 하나로 여전히 재무제표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기부 판로정책과 관계자는 “입찰 기업의 지속가능성,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신용등급 평가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재무제표만으로는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다”며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행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다. 대다수 공공기관은 기술평가를 중심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과제 수행자를 내정해두고 입찰공고를 올리는 경우도 문제다. 일부 공공기관이 정책 연속성을 이유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던 비영리단체 및 기관에 유리한 입찰고를 내는 경우다.
A 씨와 B씨는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확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도 공공입찰 시 재무제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부 차원에서 산하 공공기관의 이 같은 비위를 철저히 단속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