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에 낙서한 시민, 특수재물손괴 혐의 재판 중 -“소유권자 없는 흉물…생명력 다한 상징물일 뿐” -‘평화의 소녀상’ 앞 청년들 노숙 농성…600일 코앞 -“한일협정 폐기 우선…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다”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정치적 상징이 된 두 개의 동상이 있다. 하나는 페인트칠을 당하며 철거 목소리가 나왔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번갈아가며 노숙을 하고 지키겠다고 나섰다. ‘박정희 흉상’과 ‘평화의 소녀상’의 이야기다. 법적인 처벌을 감수하며, 혹은 일상의 편안함을 내려놓으며 동상을 두고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에 페이트칠…왜?=서울 영등포 문래근린공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령관으로 있던 제6관구가 있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의 지하에 위치한 벙커에서 참모들과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5ㆍ16이 혁명이 아니고 쿠데타라고 초ㆍ중ㆍ고 교과서가 바뀐게 90년대 중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강을 건너 정권을 장악했다고 별 두개 달린 군복 입은 박정희 동상을 남겨놓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담긴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 아닐까요.”

최황(33) 씨는 지난해 12월 박정희 흉상의 얼굴과 가슴에 빨간 스프레이로 칠을 하고 ‘철거하라’는 문구를 썼다.

7일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 안 박정희 흉상 앞에서 최황(33) 씨가 지난 12월 흉상 페인트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7일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 안 박정희 흉상 앞에서 최황(33) 씨가 지난 12월 흉상 페인트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조형미술을 전공한 최 씨는 당시 박정희 흉상 앞에서 벌어진 굿판을 보고 행동을 결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해달라며 박정희 추종자들이 벌인 굿판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흉상을 철거하라고 서명을 받고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영등포구와 서울시는 모두 자신들에게 소유권이 없어 철거하지 못한다고 했다. 앞서 군부대가 자리를 옮기며 남겨뒀으나 공식적으로 받은 이가 없었다. 흉상 관리에 세금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관리대장도 없었다.

최 씨는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흉상’을 ‘흉물’로 만들어 철거의 근거를 만드는 ‘미학적 코드’를 담고자 했다. 정부가 용역깡패를 동원해 재개발을 밀어붙이는 ,골목길에 들어가 문짝을 뜯어내고 빨간 페인트로 ‘철거’ 글씨를 남기는 방식을 차용했다.

최 씨는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돼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 씨는 소유자가 없는 물건에 대한 재물손괴가 가능한지를 두고 다투고 있다. 최 씨는 “시간이 지나고 역사적 사건의 해석이 달라지면 상징물의 생명력은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정희 흉상은 죽은 지 한참된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8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 농성장에 박소현(28ㆍ여) 씨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8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 농성장에 박소현(28ㆍ여) 씨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폭염 속 24시간 농성…“지켜야만 하는 소녀상”=땡볕이 내려쬐는 서울 종로 한복판. 신축 공사가 한창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던 중인 박소현(28ㆍ여) 씨는 한켠에 마련된 그늘막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앞에는 비닐로 된 천막과 스티로폴 장판이 깔려있었다. 자그마한 선풍기 하나가 한여름의 노숙농성을 설명했다. 박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자녀와 함께 소녀상 앞을 지나던 30대 여성이 과자와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남겨두고 갔다.

박 씨를 포함한 10여명의 청년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하기 위해 번갈아 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깔고 앉은지도 곧 있으면 600일을 향해간다.

이들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최종적ㆍ불가역적’이라는 명분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자 이틀후부터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정부가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들은 엄동설한에 텐트를 치며 버텼다.

노숙을 이어가며 이들은 농성장에서 학교 시험공부와 취업준비를 했다. 자기 외 더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박 씨는 소녀상을 이렇게까지 해서 지키는 이유에 대해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소녀상 지킴이는 “한일 합의를 폐기하고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을 때까지 노숙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고 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소녀상에 대한 철거요구를 여러차례 이어왔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이 철거 요구를 할 때마다 소녀상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jin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