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현지시간) 향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그는 태국 역사상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짜크리 왕조의 초대왕을 제외하곤 ’대왕‘ 칭호가 붙은 유일한 왕이었다.
즉위한 지 1년 만에 숨진 형 아난타 마히돈(라마 8세)의 뒤를 이어 1946년 6월 9일 왕위에 올라 올해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왕이다.
태국인의 신망이 두터운 건 푸미폰이 보여준 자국민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카메라, 지도, 연필의 ‘3종 세트’를 들고 전국 곳곳을 누볐다. 농번기에 직접 바지춤을 올리고 땀을 흘리거나, 빈민가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무엇보다 푸미폰을 ’살이있는 신‘으로 추앙받게 만든 건 그가 보여준 민주화의 열망이었다. 1973년 학생들이 군부에 맞서 항쟁을 벌일 때는 민주화 세력에 힘을 실어줬다. 또 1992년 쿠데타를 벌인 수찐다 크라쁘라윤 총리와 짬롱 시무앙 방콕 시장이 갈등을 빚을 때도 빛을 발했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에겐 실권이 없다. 그러나 헌법상으론 입법·행정·사법권을 행사하고 군 통수권을 가진다고 돼 있어 국민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푸미폰은 정치권과 군부의 마찰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평화적인 정권 창출에도 앞장섰다. 재임 중에 있던 다섯 차례의 쿠데타에, 정당성을 인증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물론 비판 세력도 있다. 일각에서는 푸미폰의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관측도 제기했다. 푸미폰이 가지는 막강한 영향력 탓에 그의 말 한 마디로 태국의 정치판도가 수차례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푸미폰은 시리낏 왕비(84)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이 중 유일한 아들인 와찌랄롱꼰(64)은 이미 1972년 왕세자로 책봉됐다.그러나사생활 문제로 국민적 신망을 잃어 후계자가 다른 이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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