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밀었던 젊은 남성들 대거 등돌려

“유스퀘이크” 청년 정치인도 약진

美중간선거 투표를 위해 줄을 선 텍사스대 학생들. [로이터]
美중간선거 투표를 위해 줄을 선 텍사스대 학생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을 지지했던 청년층이 고물가 직격탄을 맞고 미국 정치의 새로운 부동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SSRS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8∼29세 미국인들은 2024년과 견줘 연방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20%포인트(P)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고졸 이하 청년층과 30세 미만 백인·히스패닉 남성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지지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는데, 이들은 2년 전 대선 당시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기여했던 집단이다.

터프츠대의 청년 투표 동향을 연구기관 ‘서클’의 추산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청년 투표율은 지난 2022년 중간선거 당시와 비슷한 27%로, 줄곧 20% 수준에 머물렀던 10여 년 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릴라 스트롱 서클 상임이사는 “앞으로 선거운동 책임자들과 정치인들이 청년층을 고려하지 않는 선거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년층이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에 등을 돌린 주요 이유는 고물가와 학자금 대출 부담, 취업난, 임금 상승 정체 등 경제적 이유다. 이들은 대학 학위가 있는데도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진열대에 물건을 채우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고, 자신이 일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끼 식사하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실책을 비판하고, 생활비(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 문제 해결을 들고나오자 표심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포츠 경영 대학원에 다니는 개빈 제이콥슨(23)은 “민주당이 드디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젊은이들과 미국 노동 계층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현안을 중심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이전까지는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었다는 제이콥슨은 이번 선거에서 우편 투표를 통해 자신의 등록 주소지인 미네소타주의 민주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줬다. 그는 12만달러(약 1억6000만원)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계유지를 위해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부수입을 위해 스포츠팀 세 곳의 코치를 맡고 있고 어머니도 치위생사로 일하고 있지만,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500달러(약 70만원)짜리 비행기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년 6월에 학업을 마치면 취업 전선에 나서야 하지만, 5개월 전에 졸업한 룸메이트가 아직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것을 보며 불안해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였던 자신의 친구 상당수는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다고 제이콥슨은 전했다.

실제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캔나폴리스에 사는 조슈아 에반스(26)도 2020년과 2024년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줬지만, 공화당이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했는데도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데 실망해 이번 중간선거에 투표하지 않았다. 에반스는 WSJ에 “공화당은 Z세대 젊은 남성 지지층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학자금 대출 4만달러를 대가로 언론홍보학 학위를 받았지만 해당 분야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시급 21달러의 할인매장 진열대 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빚을 1000달러씩 갚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란 전쟁으로 오히려 물가가 치솟는 모습만 목도해야 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공화당 지지자라고 생각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 투표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오하이오주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그레이슨 매카트니(19)와 애비 브룩오버(18)도 학자금 대출 부담과 주거비, 고유가 등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캔자스시티의 대학 신입생인 제이비어 세페시(18)는 데이터센터 문제로 양극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 민주당에 투표했다.

전문가들은 그간 보수화 경향을 보였던 젊은 남성층의 표심이 극적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미국 소년·남성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 소장은 “젊은 남성이 미국 정치의 새로운 스윙보터(부동층)가 됐다”며 “민주당이 젊은 남성이 관심을 갖는 현안에 집중했다”고 평가했다. 남성을 미국 사회의 문제로 지적하는 문화 논쟁을 벌이는 대신 정체 상태인 이들의 경제적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이와 같은 표심 이동 속에서 젊은 정치인들도 약진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제임스 탈라리코(37)와 미시간주 압둘 엘 사예드(42)가 청년층 표심을 등에 업고 당선됐고, 콜로라도주의 멜라트 키로스(29)는 젠지(Gen Z·Z세대) 여성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미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이와 같은 청년층의 약진을 지진에 빗대 ‘유스퀘이크’(Youth Quake)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청년 시민단체 ‘보터스 오브 투모로우’의 산티아고 메이어 상임이사는 “시스템이 기성 부유층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청년의 좌절감을 이해하는 젊은 후보들에게 큰 에너지가 실렸다”며 “2022년 이후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산은 30% 가까이 늘어난 반면 30세 이하 청년층 자산은 20% 줄어든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을 정치인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청년층이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자로 변모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리브스 소장은 “이 그룹은 워낙 변동이 심하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영원히 이기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퓨처 코커스의 레일라 자이단 최고경영자(CEO)도 “Z세대는 아직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중”이라며 “이들의 지지는 성과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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