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바닥이 어디냐’는 질문이 다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블루쓰나미 이후 한국 반도체 주가가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은 하락의 이유를 찾는 데 몰두하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이제 이유보다 가격을 볼 때라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은 6일 보고서에서 과거 하락장마다 악재와 하락 기간은 달랐어도 저점은 비슷한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 구간에서 형성됐다며, 삼성전자가 이미 그 구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이에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12MF PBR) 1.03배에 해당하는 17만8000원 근방부터 단계적 매수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2019년 1월 0.95배, 2022년 9월 1.03배, 2024년 11월 0.83배였던 과거 세 차례 저점 PBR이 기준이다.
하락 사이클마다 악재는 달랐다. 2017년 말에는 메모리 슈퍼사이클 정점 논란이, 2021년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긴축과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위축이, 2024년에는 범용 메모리 수요 둔화와 미국 대선·관세정책 우려가 주가를 눌렀다.
하락 기간도 삼성전자 기준으로 2017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약 14개월, 2021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약 20개월, 2024년 7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로 제각각이었다. 악재의 종류도, 하락 기간도 모두 달랐지만 저점의 밸류에이션은 비슷한 범위에서 형성됐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자산가치(BPS) 17만3079원(한화투자증권 추정치, 컨센서스는 17만1196원)에 과거 세 차례 평균 저점 PBR 0.94배를 적용하면 16만3000원이 나온다. 데이터상으로는 이 가격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저점이 어디서 형성될지는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한화투자증권이 특정 가격을 저점으로 단정하지 않고 2019년과 2022년 저점의 평균 PBR 0.99배, 즉 1배 안팎인 17만~18만원대부터 나눠 사라고 제안한 이유다.
2024년 11월 저점인 0.83배, 14만4000원까지 밀릴 가능성은 낮게 봤다. 당시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확대가 경쟁사보다 늦었고, 주요 인공지능(AI) 가속기 고객사의 제품 인증과 시장 점유율에 대한 우려가 집중됐다. 메모리 업황이 회복돼도 삼성전자만 충분한 수혜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 기업 고유의 할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HBM 공급 확대와 제품 경쟁력 개선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고 있어 그런 극단적인 저점 멀티플(주가배수)이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실적이 좋아도 주가는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삼성전자는 2017년 11월 주가 고점 이후에도 2018년 영업이익이 58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8% 늘었다. 2021년 1월 고점 이후 2021년 영업이익은 51조6000억원으로 43.5%, 2024년 7월 고점 이후 2025년 영업이익은 43조6000억원으로 33.2% 증가했다.
세 차례 모두 주가가 고점을 찍은 뒤에도 연간 실적은 개선됐다. 주가가 현재 이익보다 미래 이익 증가율과 시장 기대의 변화를 먼저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등 시점도 악재 해소와 무관했다. 2019년 초 저점 당시 미·중 무역분쟁은 진행 중이었고 메모리 가격과 실적은 추가로 나빠졌다. 2022년 9월 저점에서도 연준의 금리 인상은 끝나지 않았고 IT 수요 부진과 메모리 재고 조정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주가는 먼저 회복세로 돌아섰다. 악재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악재를 반영한 가격이 충분히 낮아졌을 때 매수 기회가 열렸다는 해석이다.
과거 세 차례 저점에서 삼성전자를 샀다면 이후 상승 사이클 최고가까지 각각 163%, 71%, 651%의 최대 상승 기회가 있었다. 사후적으로 확인된 최대 상승폭이지만 역사적 저평가 구간에서 위험을 감수한 투자자에게 상당한 수익 기회가 돌아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준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과거에도 주가의 저점은 악재가 해결된 시점이나 실적 개선이 확인된 시점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수를 미루기보다 역사적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위험을 감수할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분명한 점은 과거 데이터를 돌아봤을 때 현재 저점 근처에 주가가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주가가 하락하는 이유를 찾고 설명하기보다 밸류에이션에 근거해 매수를 시작할 가격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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