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7~18일 ‘기억동행 박람회’
치매극복의 날 앞두고 종각역서 개최
경도인지장애·치매 환자, 경험 공유
‘일자리 뱅크’ 취업연계 자리도 마련
‘기억서점’ 등 區 사회참여 사례 공개
“행복한 하루 되세요!” 16일 전화 인터뷰를 마무리한 이정순(80) 씨의 목소리가 밝고 힘찼다. 이씨는 일주일에 두 번, 커피나 차를 내려 손님에게 대접하는 여성 바리스타다. “즐겁게 살면 병은 오다가도 도망가요.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어요.” 이씨의 말이다.
이 씨는 치매 판정을 받은지 6년이 된 환자다. 지금은 서울 구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바리스타로 일한다. “집에 가는 역 이름이 생각이 안 났어요. 한 시간 동안 밖에서 주소를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방안에서 배변을 하기도 했어요.”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시간” “방바닥에 앉아서 통곡했던 날들”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치매 판정을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활로를 찾았다. 더 배우려 했고, 더 웃으려 했다. 이제 그는 치매를 먼저 겪은 경험자로서, 구로구 오류동 치매안심센터 분소에서 같은 처지의 어르신을 돕고 있다. 이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치매동행대상 서울시장상, 올해 8월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치매를 겪거나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환자가 직접 메시지를 전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 서울시는 제19회 치매극복의 날(매년 9월 21일)을 맞아 17~18일 종각역 태양의 정원에서 ‘기억동행 박람회’를 개최한다. 앞서 언급한 이씨도 박람회에 참석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치매 당사자 약 40명이 바리스타와 행사 안내 등 ‘일일 스태프’로 직접 나선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시광역치매센터와 25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가 주관한다. 이번 박람회의 핵심 메시지는 ‘치매가 있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이다. 초기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당사자들은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자신의 경험과 강점을 활용해 사회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욕구도 여전히 있다.
어르신들은 ‘기억다방’에서는 바리스타로 음료를 만들고 시민을 응대한다. ‘디멘시아 도서관’에서는 책을 정리하고 보조사서 역할도 맡는다. 치매 공감 상담, 화분 꾸미기, 낙상예방 운동·게임, ‘브레인핏45’ 애플리케이션 홍보, 설치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박람회에서는 경도인지장애 당사자의 일자리와 사회활동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함께하는 내일(My Job), 일자리 뱅크’도 운영한다. 기업·기관은 경도인지장애 당사자가 수행할 수 있는 직무와 사회적 배려 일자리의 가능성을 함께 찾는다.
자치구의 다양한 사례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성북구 ‘기억서점’은 경도인지장애·치매 당사자와 가족이 글과 그림을 활용해 도서와 책갈피를 제작·출판한다. 성동구 ‘기억잡화점’은 치매환자 가족과 경도인지장애·초로기 치매 당사자가 기억 굿즈를 직접 제작·포장하고 행사에 참여한다.
박람회 마지막날인 18일에는 초로기 치매환자의 돌봄 가족이기도 한 조기현 작가와 함께하는 ‘깜빡해도 반짝이는’ 토크콘서트를 연다.
실제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치매환자도 함께 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올해 7월 발간한 ‘대한민구 치매현황’에 따르면 치매환자 수는 ▷2022년 14만7040명 ▷2023년 14만7948명 ▷2024년 15만712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 내 65세 미만인 ‘초로기 치매환자’ 수는 9.3%→7.8%→6.7%로 감소 추세에 있지만, 전국 평균(7.7%→6.7%→6.0%)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초로기 치매환자는 65세 미만 젊은 치매로,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치매 증상이 나타나 좌절감이 큰 경향이 있다.
이에 서울시는 ▷강서구(2023년 개소) ▷도봉구·양천구(각 2025년) ▷성북구(2026년), 4곳에서 초로기 치매환자를 위한 ‘초록기억카페’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팜 작물 재배·수경재배 교육, 농장분양 등 원예 프로그램과 서빙, 음료제조, 키오스크로 주문받기 등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운영한 3곳의 초록기억카페에서는 총 668명의 초로기 치매환자가 방문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서울 강서구 초록기억카페에서 여성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최인옥(65) 씨는 “노력하고, 기다리면 치료는 다 된다.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된다”며 “혼자 있기 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치매극복의 날 행사에서도 치매·경도인지장애 당사자가 공감 연설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당시 서울 강북구에 사는 김모 씨는 2019년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치매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에 꾸준히 참여하며 봉사단으로 활동한 경험을 공유했다. 서울 관악구의 최모 씨 역시 처음에는 위축돼 사회활동에 소극적이었으나 치매안심센터 인지강화교실에 참여하면서부터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털어놨다.
조영창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이번 박람회가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살려 사회와 연결되는 기회가 되고, 시민에게는 치매가 있어도 함께 일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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