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 큰 에너지·식품가 뺀 근원인플레 반등

중동발 유가쇼크에 2% 물가목표 안착 못해

비료·농산물·운송비 ‘2차 물가상승’ 도미노

‘금리인상→이자부담→소비위축’ 경기 둔화

‘긴축의 늪’ 장기화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선진국부터 개도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인플레이션 공포로 몰아넣는 주요인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다. 유가가 가스비, 비료값, 농산물 가격, 운송비 등을 연쇄적으로 밀어 올리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선제적 금리 인상에 나서면 정부와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 경기 침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라는 매듭을 풀지 못하면 금리 인상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어,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시대’ 도래 우려에 대한 도화선은 단연 유가 상승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애초 “6주면 끝날 것”이라 공언했던 이란 전쟁이 6개월을 넘기면서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전쟁 전 최대 70달러 선을 넘지 않았다가 지난 4일 기준 96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란이 전쟁 직후 최대의 무기로 내세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유가 뿐 아니라 가스, 비료 등의 공급망도 막아버렸다. 호르무즈 해협은 카타르 등 주요 천연가스 생산국의 수출 통로였고, 천연가스는 비료 생산의 주원료이자 열원이었다. 해협이 막히면서 비료값 폭등 등 후폭풍이 이어졌고, 파종기 비료 공급 차질은 농산물 가격 상승이란 결과를 낳았다.

유가 상승은 육상·해상·항공 운송 단가를 끌어올렸고, 인상된 물류비는 결국 기업 제조 원가도 밀어 올렸다. 각국 중앙은행은 변동성이 큰 유가와 식료품비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을 살펴보지만, 유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다른 항목으로 전이되면서 근원 인플레이션도 위협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추정에 따르면 선진국 23곳에서 연간 평균 근원 인플레이션율은 올해 초 2.7%에서 최근 2.9%로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원인에 유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동 비용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서비스 물가의 경우,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조사 대상 23개 선진국 중 3분의 2에서 상승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완제품 가격은 공급망 우려가 해소되면 안정을 찾을 수 있지만, 의료나 주거·외식 등 서비스 물가는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성격을 띤다.

미국의 관세 정책 등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인한 공급망 다변화 기용도 기본 생산 단가를 높여놓은 상태다. 각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과 국채 발행이 결국 장기 금리를 밀어 올려 금융 비용 발(發)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시기를 늦추거나, 오히려 금리를 인상하면 결국 경기 침체로 갈 우려가 커진다. 기준 금리 인상은 보통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가 금융 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 금리도 기준 금리 인상에 맞춰 올라간다. 이에 정부와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은 벌써 지난 7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6% 감소로 시장 예상치(0.1% 증가)를 크게 밑도는 등 소비가 위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 금리도 올라가게 돼, 기업도 한층 커진 이자 부담을 지게 된다. 자연히 기업은 투자를 축소하거나 고용을 줄여, 고용 시장도 냉각될 수 있다.

제이크 달러하이드 롱보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일 로이터에 “금리 상승이 기업과 소비자의 차입비용을 높인다”며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이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고 증시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벨 RBC 블루베이자산운용 시장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정부와 기업의 채권 공급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우려와 대규모 채권 발행이 맞물리면서 국채금리가 오르고, 이는 정부의 이자 부담과 기업의 투자 비용을 높여 경기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인 전쟁을 조기에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다. 그렇게 되면 경기는 침체 사이클로 접어드는 가운데 물가 인상 요인은 그대로여서,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암울한 전망을 뒷받침하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왔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은 6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이 끔찍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며, 이 전쟁을 끝낼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전쟁이 향후 6개월 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패네타는 이번 전쟁이 과거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실패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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