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19회 서울국제발레축제 개막
마린스키 마리아 호레바 내한 간담회
“예술은 정치와 별개…나는 예술가일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 민철은 놀라운 댄서예요. ‘지젤’ 첫 만남 장면에서 민철의 눈빛에서 알브레히트로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요.”
마린스키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인 ‘월드스타’ 마리아 호레바(26)가 한국의 ‘발레돌’ 전민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민철은 지난해 10월 마린스키 발레단에 퍼스트 솔리스트로 입단했다.
2026서울국제발레축제의 ‘메인 이벤트’인 ‘K발레월드스타’(25~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을 위해 내한한 호레바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민철과 수많은 작품에서 파트너를 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다”며 웃었다.
러시아 바가노바 스쿨을 수석으로 졸업, 2018년 열여덟 살에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호레바는 등장과 동시에 화제였다. 등급별로 밟고 올라가야 하는 발레단에서 모든 단계를 뛰어넘고 입단과 동시에 퍼스트 솔리스트가 됐기에 세계 발레계가 주목했다. 앞서 한국 내한공연 당시 동양인 최초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인 김기민과 ‘돈키호테’를 추며 국내 관객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전민철 입단 이후로 상당수 작품에서 그의 파트너를 맡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호두까기 인형’, ‘지젤’, ‘파라오의 딸’ 등 수많은 작품을 함께 준비했어요. 특히 ‘파라오의 딸’은 저는 이미 했지만, 민철은 데뷔인 작품이라 그의 솔로 영상을 보며 조언해 줬어요.”
호레바가 보는 전민철은 테크닉, 연기, 파트너링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완전체였다. 그는 “민철은 테크닉은 물론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파트너와의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무용수”라고 치켜세웠다.
8년 만에 한국을 찾은 호레바는 공연에 앞서 전날 진행된 학생 대상 마스터클래스를 언급하며 “(참여 학생들이) 지적 사항을 빠르게 이해하고 흡수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민철과 같은 훌륭한 무용수가 이런 환경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호레바는 2020년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발레스타 8인’에 이름을 올린 ‘발레 스타’다. 그는 “클래식 발레가 창조된 마린스키의 전통 속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다”고 했다.
“‘백조의 호수’, ‘지젤’, ‘파키타’ 같은 이 모든 클래식 배역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가 만들었어요. 전통을 온전히 흡수하고, 바가노바로부터 프티파에 이르는 이 거장들의 연결 고리가 마린스키 코치들과 마린스키 레퍼토리를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놀라운 일입니다.”
8년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 어떤 배역들을 춤추며,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떤 캐릭터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그 어떤 직함이나 금전적 수익, 명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석 승급이나 솔리스트가 될 기회를 얻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예술은 무엇이든 간에 결국 예술”이라며 “파키타, 지젤, 줄리엣, 오데트, 오딜 등 이토록 다양하고 놀라운 인물들을 내 춤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행운아 중 한 명이라고 느낀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러시아 예술가들의 무대는 유럽과 미국에서 줄줄이 취소되곤 했다. 마린스키와 볼쇼이 발레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그러나 “정치와 예술은 별개의 문제”라며 “발레의 본질은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로 모으고, 변치 않는 아름다운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의 팬으로 아미를 자처하고 K-드라마를 좋아하는 호레바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도 활발하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발레 동작을 하는 모습도 화제였다. 김동곤 한국발레협회 회장은 “호레바가 한국말도 굉장히 잘한다”고 귀띔했다.
호레바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젊은 세대가 발레를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발레가 영화나 한국 드라마보다도 훨씬 더 진실한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임을 알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축제는 총 4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호레바를 비롯해 최정상급 무용수들이 출동하는 K-발레 월드스타를 통해 갈라 무대가 이어지고, 국내 민간 안무 단체들의 창작 작품이 올라오는 K-발레 레퍼토리, 창작 신인 안무가전, 신진 창작자 발굴의 장·청소년 발레 페스티벌도 이어진다.
특히 ‘K-발레 월드스타’ 갈라에는 호레바와 볼쇼이 발레단 솔리스트 마카르 미할킨이 현대 듀엣 작품 ‘클로저’와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를, 일본 신국립극장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이명현과 나오츠카 미호가 ‘코펠리아’와 ‘그랑파 클래식’을 무대에 올린다.
국내 발레단 대표로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박종석,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현준·이유림, 솔리스트 전여진·이승민 등이 참여해 창작 발레 ‘심청’, ‘미리내길’, ‘지젤’, ‘백조의 호수’ 등을 선보인다. 영국 로열 발레학교에 재학 중인 2026 YAGP 그랑프리 수상자 서민준과 서울발레콩쿠르 대상 수상자 조수민 등 차세대 유망주들의 무대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동곤 한국발레협회장은 “한국 발레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수많은 월드스타를 배출하고 있는 만큼, 협회는 일시적인 유행을 좇기보다 지속해서 인재를 발굴하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창작해 낼 수 있는 든든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