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서 변동성 큰 항목 제외 지표

물가의 기조적·장기적 추이 파악에 용이

신현송 총재 “근원물가 더 중요하게 봐”

2차 파급효과 나타나…수요측 압력도↑

금리 연속 올리나…한은 안팎서 이견도

2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2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2%대로 떨어졌지만 한국은행의 물가 경계감은 여전히 높다. 소비자물가라는 ‘헤드라인’ 지표 뒤에 있는 근원물가는 오히려 더 뛰었기 때문이다.

근원물가란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등 품목을 뺀 물가 지표다. 유가나 날씨 등 외부 변수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품목들을 제외한 것이다. 물가의 장기적이고 기조적인 흐름을 볼 수 있어 ‘기조적 물가’, ‘추세 물가’ 등으로도 통한다.

2007년부터 ‘소비자물가’ 안정 목표…공급 충격에 과잉대응 한계

8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상승하며 지난 5월(3.1%) 이후 석 달 만에 2%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오르며 6월(2.5%)보다 상승률이 0.1%포인트 올랐다. 2023년 12월(2.8%) 이후 2년 7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현재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 대상 지표는 소비자물가다. 한은은 2019년부터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달성하는 것을 물가안정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은이 처음부터 소비자물가를 물가안정 목표 지표로 삼았던 것은 아니다.

한은이 ‘물가안정 목표제’를 처음 도입한 1998년에는 근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대상 지표로 삼았다.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를 뒤흔들던 상황에서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 따른 물가 교란을 배제하고 통화정책으로 제어할 수 있는 추세적 물가 상승 압력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한은이 소비자물가를 대상 지표로 삼은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한은은 “근원인플레이션은 생계 비중 중요 항목인 농산물과 석유가격을 포함대상에서 제외해 국민이 느끼는 체감물가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대상 지표를 근원인플레이션에서 소비자물가로 바꿨다.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는 물가목표 대상 지표로서 장단점이 명확하다. 소비자물가는 지표의 안정성, 포괄성, 속보성, 높은 인지도 등이 장점이다. 유가나 농산물 등은 소비자들의 체감물가와 더 가깝기도 하다. 이와 달리 근원물가는 공급충격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영향력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프레더릭 미시킨 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는 과거 근원물가를 통화정책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유가나 곡물값이 뛰는 건 수요측 요인이 아니기 때문에 금리를 올린다고 큰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소비자물가만 보고 움직이면 일시적 등락에 과잉 대응하기 쉽고, 소비자물가는 공급 충격에 잠깐 흔들리더라도 결국은 근원물가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근원물가를 바라보고 통화정책을 펼치는 게 합당하다고도 주장했다.

신현송 “근원물가 더 중요”…2차 파급효과·수요측 압력 ‘초점’

신현송 총재가 최근 근원물가를 앞세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재 소비자물가에 이란전쟁발(發) 공급 충격이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외부 변수에 출렁이는 ‘잡음’을 제거하고 기조적인 물가 흐름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펼치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지난달 2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근원물가 상승을 잡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근원물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7월 소비자물가의 세부 내용을 보면 유가 상승에 따른 2차 파급 효과가 시차를 두고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흐름이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3.5%, 외식을 뺀 개인서비스는 4.1%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보험서비스료(13.4%), 공동주택관리비(3.5%), 자동차수리비(6.1%), 전세(1.1%)·월세(1.2%)처럼 한 번 오르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경직성’ 품목도 뛰었다. 석유류 가격이 반짝 올랐다가 떨어졌지만, 그 여파로 다른 항목들의 가격들이 연쇄적으로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더 나아가 앞으로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하더라도, 높은 경제 성장세와 임금 상승세 등 수요측 요인들이 앞으로 근원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신 총재가 최근 국내총생산(GDP)보다 국내총소득(GDI)을 더 중요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GDI란 국가 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을 의미한다. 생산량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세를 보여주는 GDP에 비해 GDI는 수출입 가격 변동에 따른 소득 증가분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반도체 가격 급등을 중심으로 수출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GDP보다 GDI가 더 경제 상황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인 신 총재의 생각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소득이 급증하면 그만큼 민간소비가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는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여기에 IT 업종을 중심으로 성과급이나 임금 등도 덩달아 오르는 것도 수요측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2분기 실질 GDI는 3.6% 증가하며 실질 GDP 성장률(0.6%)을 6배가량 웃돌았다. 전년 대비 증가율 기준으로 실질 GDI는 15.6%를 기록하며 1988년 1분기(16.4%) 이후 38년여 만에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

신 총재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로 인상 기조를 한동안 이어가겠다고 시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수요측 압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은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의구심도 작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이란전쟁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가 나중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도 지금은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내년에는 오히려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며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못 박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등 수요측 요인이 얼마나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향후 추이를 두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은은 오는 27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2분기 ‘깜짝’ 경제성장률과 7월 근원물가 고공행진 등을 앞세워 연속 인상을 단행할지 관심이 쏠린다.


kimst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