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나자로프 체인링크 공동창립자 인터뷰
한·EU ‘프로젝트 판게아’로 외환결제 T+0 도전
“원화스테이블코인 발행·상환·수탁 규정 서둘러야”
“AI 에이전트가 전통 금융·디파이 융합 이끌 것”
토큰화 MMF 10배 성장…DTCC, 10월 상용화 추진
[헤럴드경제=경예은 기자] “한국이 신뢰받는 온체인 금융 허브로 도약하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은행들이 안심하고 상용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발행·상환·수탁 관련 규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세르게이 나자로프 체인링크 공동창립자 겸 체인링크랩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아시아의 온체인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려면 제도적 불확실성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체인링크는 오프체인의 가격 데이터를 온체인으로 전달하는 탈중앙화 오라클 네트워크로 출발했다. 최근에는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 프로토콜(CCIP), 체인링크 런타임 환경(CRE), 자동화 컴플라이언스 엔진(ACE) 등을 기반으로 블록체인 간 거래와 금융 업무 자동화, 규제 준수까지 지원하며 기관용 온체인 금융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나자로프 CEO는 이러한 확장에 대해 “오라클 기술이 수년간 온체인에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며 신뢰성을 입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7월 백악관에서 열린 지니어스법 서명식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2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혁신자문위원회(IAC) 위원으로 위촉됐다. 현재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상품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규제 방향을 자문하고 있다.
‘프로젝트 판게아’가 온체인 외환시장 내 원화 입지 넓힐까
나자로프 CEO는 한국의 강점으로 활발한 디지털자산 투자자층과 은행권의 빠른 기술 도입,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정책논의를 꼽았다.
그는 “대부분의 시장은 이 가운데 한두 가지 조건만 갖추고 있다”며 “한국처럼 세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진 경우는 드물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융회사가 실증을 넘어 실제 서비스를 구축하려면 사업 범위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인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지니어스법과 유럽연합(EU)의 미카, 싱가포르와 일본의 인가 체계 등을 참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자로프 CEO는 “한국은 해외에서 효과가 입증된 제도를 참고하되 세계 무역과 자본 흐름에서 원화가 담당하는 고유한 역할에 맞춰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과 유럽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 판게아’를 통해 원화가 글로벌 온체인 외환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프로젝트 판게아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케이뱅크·전북은행 등 국내 은행 연합체 유니카(UniKA)와 유럽연합(EU) 37개 은행연합 키발리스(Qivalis) 등이 원화·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실시간 외환 결제 체계를 연구·검증하는 사업이다.
하루 거래 규모가 9조6000억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외환시장은 통상 거래일로부터 2영업일 뒤 결제하는 ‘T+2’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은 자금이 오가는 동안 거래 상대방의 신용위험과 결제 실패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프로젝트 판게아는 이 기간을 당일 결제(T+0)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화와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의 교환에는 외환동시결제(PvP) 방식을 적용한다. 어느 한쪽의 자금이라도 이전되지 않으면 거래 전체가 이뤄지지 않는 구조다.
기존 은행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국제금융전문표준인 ISO 20022와 스위프트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인링크의 CRE는 스위프트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를 블록체인에서 실행할 수 있는 거래 지시로 전환한다. CCIP는 유로화 스테이블코인을 원화 결제가 이뤄지는 블록체인으로 옮기고 데이터 스트림은 1초 이내에 외환시장 데이터를 제공한다.
나자로프 CEO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오라클 인프라를 결합하면 유로화와 원화 거래를 암호학적으로 보장된 방식으로 동시에 결제할 수 있다”며 “은행들도 기존 백엔드 인프라를 재구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한국이 지금의 방향성을 유지한다면 기관 중심 온체인 금융의 실질적 통로가 될 수 있는 기술적 준비도와 시장 깊이를 갖추고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 데이터부터 카드 결제까지…전통 금융의 온체인 연결
나자로프 CEO는 온체인 금융의 미래가 전통 금융과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형태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디파이가 빠른 금융 혁신을 이끈다면 전통 금융은 기존 환경을 유지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체인링크는 두 금융 체계를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디파이가 전통 금융에 축적된 수백조 달러 규모의 자산 가치에 안전하게 접근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금융기관에는 거래 자동화와 서비스 간 연계, 데이터 검증 기능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나자로프 CEO는 “글로벌 기업들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체인링크의 목적은 기존 금융 시스템을 특정 중개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새로운 글로벌 금융시장과 연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전통 금융 데이터 사업자도 온체인에 발을 들이는 모습이다. 도이체뵈르제와 미 상무부, FTSE러셀, S&P 글로벌레이팅스, 트레이드웹, SIX 그룹 등도 체인링크를 통해 거시경제 지표를 비롯한 금융 데이터를 온체인에 제공하고 있다.
그는 “데이터 사업자들은 독점 데이터의 가치가 큰 만큼 보안과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왔다”며 “기관 수요가 늘면서 온체인 시장을 새로운 유통망이자 수익원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마스터카드와의 협업은 전통 금융망을 온체인 경제 진입의 교두보로 활용한 사례다. 체인링크와 마스터카드는 지난해 6월 카드 이용자가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 암호화폐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디지털자산 이용 과정이 일반적인 카드 거래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간편해지면 온체인 금융 이용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나자로프 CEO는 내다봤다.
다만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브릿지 해킹 등 보안 위험은 기관 참여의 걸림돌이다. 체인링크는 CCIP에 여러 독립 운영자가 참여하는 글로벌 분산 구조와 내장형 위험 통제 장치를 적용했다.
나자로프 CEO는 “크라켄과 리도, 롬바드 등이 자체 보안 검토를 거쳐 CCIP를 채택했다”며 “최근 수개월간 크로스체인 인프라를 CCIP로 전환한 토큰 자산의 가치가 70억달러를 넘었다”고 밝혔다.
자산 토큰화 확산…DTCC도 상용화 채비
자산 토큰화 시장은 미국 국채와 머니마켓펀드(MMF)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RWA.xyz에 따르면 이날 기준 분산형 토큰화 자산 가치는 약 373억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국 국채와 국채형 펀드가 약 162억달러를 차지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토큰화 MMF 운용 규모도 2023년 말 7억7000만달러에서 지난해 10월 말 약 90억달러로 10배 넘게 늘었다.
나자로프 CEO는 시장이 커질수록 토큰 발행 이후의 관리가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블록체인에 토큰을 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 어려운 것은 그 이후의 과정”이라며 “중단된 프로젝트들은 자산의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유통시장과 규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토큰화 자산이 실제 금융상품으로 거래되려면 가격과 순자산가치(NAV)를 제때 반영하고 배당과 의결권 등을 차질없이 처리해야 한다. 투자자 자격에 따라 거래를 제한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체인링크와 미국 예탁결제원(DTCC)의 협업은 자산 토큰화가 실증에서 상용화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양사는 2024년 ‘스마트 NAV’ 실증을 통해 DTCC가 취합한 펀드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제공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공모펀드 토큰화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을 실험한 것이다.
이후 협력 범위는 담보의 가치평가, 증거금 산정, 결제를 상시 처리하는 담보 앱체인으로 확대됐다.
담보 앱체인은 담보 제공자와 수취인, 담보를 보관·관리하는 수탁 기관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 원장이다. 참여 기관은 담보의 소유권과 가치, 사용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권한에 따라 필요한 정보만 열람할 수 있다. 체인링크는 연결 계층을 맡아 자산 가격과 가치평가 정보를 제공하고 CRE를 통해 기관간 업무를 조율한다.
DTCC는 지난달 자회사인 DTC에 보관된 증권을 토큰으로 전환해 실제 운영 환경에서 거래하는 시범사업도 진행했다. 토큰화 자산은 담보 설정과 증권대차, 미국 국채 및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주식 간 동시결제(DvD), 중앙청산소(CCP) 증거금 처리 등에 사용됐다.
이번 시범 거래에는 블랙록과 JP모건, 골드만삭스, 뱅가드 등 3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 DTCC는 오는 10월 정식 토큰화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나자로프 CEO는 “연간 수천조달러의 증권거래를 처리하는 DTCC가 실증에서 상용화로 이동한 것은 디지털자산 시장이 실험 단계를 넘어섰다는 신호”라며 “이제 기관들은 주요 자산군의 토큰화 업무 전반을 대규모 상용 환경에서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에이전트 시대, 전통 금융과 디파이 통합될 것”
한편 시장에서는 앞으로 온체인 금융 시장에서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나자로프 CEO는 “AI 에이전트에 자산을 이동하거나 거래를 체결할 권한을 부여한다면 모든 행동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규제당국과 금융회사가 신뢰할 수 있는 감사 기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인링크는 스마트컨트랙트의 신뢰 문제를 해결해온 기술을 AI 에이전트로 확대하고 있다. 검증된 시장 데이터와 재사용할 수 있는 고객확인(KYC) 자격 정보를 제공하고 AI가 정해진 권한 안에서만 거래하도록 통제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 간 데이터와 자산의 이동을 지원하고 AI의 실행 과정에는 검증 가능한 감사 기록을 남긴다.
나자로프 CEO는 AI 기반 자동화와 스테이블코인 결제, 토큰화 펀드, 담보 관리를 별개의 흐름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의 온체인 생태계 안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속도를 높이고 토큰화 담보는 자산의 활용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AI 에이전트가 온체인 생태계 전반에서 여러 단계의 복잡한 금융 업무를 직접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전통 금융과 디파이 생태계가 하나의 금융 시스템으로 융합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kyou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