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게임이 된 학폭⑦-학교폭력 전담조사관

[기획 의도]

학교폭력 엄벌주의가 교실을 비정한 ‘생존 게임’으로 밀어 넣었다. 사소한 다툼도 무조건 학폭위로 던져지면서 심의는 폭증했지만 정작 ‘학교폭력 아님’ 처분만 쏟아지며 교실의 자정 기능은 마비됐다. 입시 감점을 피하려는 어른들의 소송 대리전 속에서 아이들은 사과와 화해 대신 약점을 수집했다. 피해자 보호라는 본질을 잃고 사법화의 늪에 빠진 학폭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학교폭력사건에 참여하는 이들의 시각으로 입체적으로 해부해 보고자 한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학교폭력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챗GPT로 제작]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학교폭력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챗GPT로 제작]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이우중 수습기자] “교육지원청에서 ‘몇월 며칠에 시간 되느냐’는 식으로 연락이 오는데, 전문성을 따지는 것보다 그 시간에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의 한 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으로 활동한 A씨는 현행 조사관 배정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 조사는 아무나 맡겨서는 안 되는 업무인데 실제 조사관들의 역량 차이가 상당하다”며 “어떤 조사관이 배정되느냐에 따라 조사과정과 결과물이 달라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이하 전담조사관)는 2024년 교사의 학교폭력 업무 부담을 줄이고 사안 조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신규위촉·재위촉 되는 형태로 전국에 약 1000여명의 전담조사관이 활동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조사관별 역량 차이 ▷배정 방식 ▷짧은 조사관 교육 ▷이해충돌 방지 장치 등을 둘러싸고 제도의 빈틈이 드러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의 ‘2026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전담조사관은 학교폭력이나 생활교육 경험이 있는 퇴직 교원·경찰, 청소년 상담·보호 분야 전문가, 사안조사 경험자 등이 맡을 수 있다.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피해·가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 교사를 면담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이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판단의 기초가 되는 조사자료를 작성한다.

최종 판단은 심의위원회가 하지만 전담조사관은 양측의 엇갈린 진술과 증거를 처음으로 체계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어떤 진술을 추가로 확인하고 상반된 주장을 조사보고서에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이후 심의 판단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사건 난도보다 일정 먼저”…조사관 배정 ‘복불복’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는 사건의 난도나 조사관의 전문 분야보다 조사가 가능한 일정이 배정 과정에서우선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기도 소속 전담조사관은 “단체대화방에서 조사관을 모집하는 것도 아니고 담당자가 문자로 특정 날짜와 시간에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며 “현실적으로는 사건의 난도나 조사관의 전문 분야보다 일정이 먼저 맞아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담조사관들의 경력이 다양한 만큼 조사 경험과 학생 면담 능력 조사보고서 작성 역량에서도 편차가 있다. 일정 수준의 자격 요건을 두고 있지만 퇴직 교원과 경찰, 상담 전문가 등이 각각 쌓아온 경력과 전문 분야가 다른 만큼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는 역량까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담당을 3년째 맡고 있다는 교사는 “다양한 경력을 쌓은 이들이 전담조사관을 하기 때문에 조사관 사이의 역량 차이도 큰 것이 사실”이라며 “교육지원청에서 추가 연수를 듣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조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른 복불복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폭력 사안은 유형별로 조사 방식이 다르다. 여러 학생의 진술이 복잡하게 엇갈리는 집단폭력부터 단체대화방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사이버폭력, 장애·이주배경 학생이 관련된 사안 등 사건 특성이 다양한 만큼 조사관의 경험과 전문성을 고려한 배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교육당국은 일정만으로 조사관을 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사관의 일정뿐 아니라 과거 경력과 사안 유형, 피해·가해 관련 학생의 성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정하고 있다”며 “단순히 시간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조사관을 보내는 방식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부 교육지원청에서 전문성보다 일정 중심으로 배정한다는 현장 지적에 대해서는 “실제 그런 사례가 있는지는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 사례가 확인된다면 담당자 연수 등을 통해 다시 안내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학교폭력 연출 이미지. 기사와는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 연출 이미지. 기사와는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지역사회에선 조사관-학부모 ‘지인’…이해충돌 발생

지역에서는 조사관과 사건 당사자 사이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또 다른 문제로 꼽힌다. 인구가 적고 지역사회 내 관계가 촘촘한 곳에서는 조사관이 피해·가해 학생의 보호자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충남의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한쪽 학생의 학부모와 전담조사관이라는 관계로 만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조사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지원청에서는 피해 또는 가해 관련 학생 측이 조사관에 대해 기피신청을 하면 다른 조사관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조사관과 상대방의 친분을 알지 못하면 기피신청 자체가 어렵다. 교육청이 조사관과 지역 내 학부모 사이의 모든 사적 관계를 사전에 파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남교육청 역시 조사관 위촉 단계에서 자격과 전문성을 검증하고 선발 이후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내 개인적 친분까지 모두 확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관계가 확인될 경우 조사관이 사건에서 빠져야 하지만 행정기관의 사전 검증뿐 아니라 조사관이 스스로 관계를 밝히고 회피하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가이드북에는 조사관에 대한 요청이나 불만이 있을 경우 교육지원청 담당자에게 알리게 돼 있다. 다만 조사관과 사건 관계자의 이해관계를 어느 범위까지 확인하고 어떤 관계를 기피·회피 대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세부 운영은 지역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조사관별 역량 차 어떻게 줄이나…교육·품질관리도 관건

이렇게 조사관의 경력과 경험이 다른 만큼 교육 당국에서의 조사관 인력풀 관리, 조사 품질 편차를 줄이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우선 서울에서는 11개 교육지원청별 추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 동부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원청 단위 역량강화 연수는 통상 하루 2~3시간가량 업무 매뉴얼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실제 업무 과정에서 보고서 작성이나 사건 처리에 보완이 필요한 조사관에게는 별도의 개별 컨설팅을 실시한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조사관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나 사안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며 “실제 업무 과정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발견되면 수시로 개별적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일회성 연수나 개별 보완을 넘어 실제 조사 결과물을 지속해서 평가하고 이를 재교육과 향후 사건 배정에 반영하는 체계도 필요하다는 언급도 나왔다.

교육계 관계자는 “전담조사관 도입으로 교사가 피해·가해 학생을 직접 조사해야 하는 부담은 줄었지만 학교폭력 업무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신고 초기 학부모 대응과 학생 분리, 생활지도와 관계 회복 등 사후관리는 여전히 학교가 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전담조사관 제도가 안착하려면 단순히 교사의 조사 업무를 외부에 넘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사건 특성에 맞는 조사관을 배정하고 배정 단계에서 이해충돌 가능성을 걸러내며 조사 이후에는 결과물의 품질을 평가해 재교육과 재위촉에 반영하는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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