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환기’나 ‘신시대’ 또는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런데 각자도생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80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시됐던 국가 생존방식이었다. 보편적 국제규범으로 80년 동안 유지된 전후질서가 쇠퇴하고 옛 질서가 다시 부활한 셈이다. 규범이 사라지면 역사가 소환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같은 나라였다는 역사를 주장하며 침략을 정당화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중세시대 사라센제국의 동서무역로 통제를 연상시킨다.

외교관들은 옛날 파일과 역사 속에서 비슷한 사례와 지혜를 찾는다. ‘이웃 국가들은 늘 서로 의심하고 선의도 없고 우호적이지도 않지만,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곧 우호관계’라는 것도 역사가 알려준 지혜다. 국제질서란 결국 그 시대의 국제환경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가관계와 외교도 변한다. 동맹도 변질된다. 역사는 외교에 좋은 참고자료다.

그러나 역사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일부 식자들은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변화를 마치 며칠간 일어난 일처럼 역사적 사례로 들면서 당장 미국이 망하고 곧 중국이 패권을 차지할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초강대국의 쇠락은 로마의 쇠망처럼 서서히 진행된다. 역사가 변화하는 시간은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더 길다. 또한 역사의 옳고 그름에 관한 인식은 시대환경의 변화와 세대에 따라 달라진다. 지정학적 운명도 국력과 그 평판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를 현재 정의의 기준으로 삼거나 원한으로 만드는 것은 역사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역사 기억은 외교·안보의 딜레마가 되기도 하고 두려움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외교정책에는 역사문제가 늘 민감한 피해의식으로 작용한다. 일본과 중국은 종종 한국에 관한 왜곡된 역사를 주장한다.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관은 아니다. 외교는 역사의 기억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다. 또한 역사갈등은 외교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스스로 풀어야 할 부분도 있다. 관련 학계가 정부와 외교에 역할과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의 국내정치가 혼탁해지면 역사갈등도 심해진다.

헨리 키신저는 마지막 저서(공저) ‘AI 이후의 세계’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국제관계의 구조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가의 의지에 대한 평판이 높을수록 적을 겁먹게 하고 행동을 변화시키고, 위기에 겁먹고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다시 위기를 맞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것은 가장 큰 역사의 교훈이다.

국가의 의지와 외교능력의 기반은 국력과 안정적인 국내정치다. 일본에 침탈당했던 국난은 미약한 국력과 혼탁한 국내정치가 근본원인이었다. 외교는 남 탓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겁주는 것이 안보정책은 아니다. 국력을 과신하여 오만해서도 안 된다. ‘우리 근대역사의 고난을 어떻게 인식하고 반성하는지’에 따라 역사가 교훈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어떤 역사인식을 언급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만큼 일본의 역사 반성을 촉구하는 외교능력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광복절과 국치일이 있는 8월은 특별한 달이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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