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靑정책실장 화두 제시
오역 사태로 본질 가려졌지만
미리 사용계획 등 수립할 필요
단순 배분 아닌 미래투자 돼야
“Korea Policy Chief Says AI-Era Windfall May Fund ‘Citizen Dividends’”
(한국 정책실장, AI 시대의 횡재 이익이 ‘국민배당금’의 재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다)
지난 12일 블룸버그에 게재된 기사다. 제목은 그럴듯했으나 본문에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블룸버그는 재원을 ‘AI 기업에 대한 세금(Tax on AI profit)’으로 표현했다. 기업 이익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초과 세수’를 환원하자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주장을 징벌적 과세인 ‘횡재세’로 둔갑시킨 것이다.
블룸버그의 오역은 국내 보도를 통해 확산됐고, 마치 한국 정부가 AI 기업들에 대한 새로운 ‘횡재세’를 준비하는 것처럼 비쳤다.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는 해석도 낳았다. 코스피가 이날 12일 8000선을 눈앞에 두고도 넘지 못한 채 뒷걸음질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가 밝혀지면서 시장은 하루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오역된 기사를 제대로 읽은 이들은 시장이 출렁이는 틈을 타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김 실장이 1994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쓴 논문을 찾아봤다. 제목이 ‘주식 시장의 효율성과 정보에 관한 에세이(Essays on Stock Market Efficiency and Information)’다. 공교롭게도 이번 소동과 꽤 맥락이 닿는다.
논문은 주가가 본질 가치를 벗어났다가 회귀하는 ‘평균 반전’ 현상과 정보의 질에 따른 변동성 심화를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가진 정보의 질이 서로 다를 때, 이것이 거래량과 가격 변동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했다. 새로운 정보가 유입될 때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가 변동성을 심화시킨다는 점도 이론적으로 고찰했다.
결국 오역이 만든 비합리적 변동성 속에서 본질을 꿰뚫고 주식을 산 이들은 승자가 되었으니, 김 실장은 자신의 연구를 몸소 증명한 셈이다.
이번에 김 실장이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을 읽어보면 핵심이 AI 시대에 대한 조망과 이에 따른 재정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은 AI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제조 역량을 가졌다.
▶AI기업의 초과 이윤은 그 속성상 집중된다. 사회 내부의 K격차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반세기에 걸쳐 국민이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안정화 할 것이냐를 백가쟁명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하자.
상당히 논리적인 구상이다. 한국 경제가 AI 시대에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도 공감이 간다.
※ 2026년 5월 11일 본지 ‘코스피, 1만 넘어 2만도 바라본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참조(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34719?sec=001)
김 실장의 실수는 사회적 안정화 장치를 ‘국민 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 있어 보인다. ‘국민 배당금’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이 김 실장의 아이디어와 꽤 다르기 때문이다.
2024년 대만은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급증하자 초과 세수를 바탕으로 국민 1인당 1만 대만달러(약 45만~46만원) 현금 지급을 추진했다. 이후 특별법 제정과 신청을 거쳐 지급이 이뤄졌다. 대만 재정부 통계를 보면 2026년 3월 말 기준 약 2316만명(수령 대상 인구의 98.29%)이 수령했다.
정부가 대만식 접근을 하지는 않을 듯하다. 김 실장이 방법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글에서 예로 든 아이디어는 청년 창업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예술인 지원, 노령연금 강화, AI 전환 교육계좌 등 정책 목적형 환원 방식이다.
지난 해 정부 세수 374조원 가운데 법인세는 84.6조원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납부한 세액은 각각 2.8조원, 5.6조원이다. 올해 예산안 기준 국세 수입은 415.4조원(3월 추경 기준)이고 예상 법인 세수는 102.4조원이다.
증권사들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은 올해 500~600조원 정도다. 내년 700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하자 삼성전자 노조도 비슷한 방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다른 기업들에서도 제기되며 새로운 노사 과제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예상 실적을 바탕으로 법인세 납부액을 추정(실효세율 반영)하면 75~105조원 범위다. 전년대비 100조원 가까운 세수가 늘어난다. 정부 역시 이 막대한 초과세수를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출산・고령화와 성장둔화라는 벽에 부딪혔던 한국경제다. AI 호황으로 생긴 초과세수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로 이어진다면, 저출산·고령화와 성장 둔화에 막힌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곧 기획예산처에서 2027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이 만들어진다.
김 실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스테이블코인 도입, 은행 중심 금융질서 재편, 신용평가 체계 수술 등 한국 경제의 가장 민감한 주제들을 가감 없이 건드려왔다. 이번에도 AI 시대 기업 이익 증가에 따른 세수 활용 방안이라는, 정책실장으로서 당연히 던져야 할 화두를 던졌으나 뜻밖의 ‘오역’에 휘말리며 정쟁의 소용돌이로 끌려 들어갔다. 문제는 김 실장이 던진 질문 자체보다, 그 질문이 번역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 실장의 제안은 그래서 지금부터 더 차분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다음은 장자의 한 구절이다.
“우물 안 개굴이에게 바다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사는 곳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사는 ‘때’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비좁은 지식인에게 도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배운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kyho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