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심오한 기술은 사라진다. 그러한 기술은 일상 속에 녹아들고 삶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20세기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주도한 제록스 팰로알토 연구소의 최고기술책임자였던 마크 와이저(Mark Weiser)의 1991년 글 ‘21세기의 컴퓨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컴퓨터가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접속가능한 유비쿼터스(Ubiquitous) 컴퓨팅의 개념을 창안하면서, 기술이 공기와 같이 세상의 일부가 되고 인간이 너무도 의존하지만 인식할 수 없게 되는 컴퓨터의 시대를 예견했다.

유비쿼터스 시대는 도래한지 오래다. 언제든지 통신이 가능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거대하게 구축된 유무선 통신망과, 데이터센터 덕분이다. 우리 앞의 휴대단말기나 네이게이션 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비쿼터스 시스템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21세기 컴퓨터에 대한 이 오래된 글에서 인공지능의 미래를 본다. 인공지능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AI 서비스들은 특정 기능과 역할에 특화된 반응형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이는 이용자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특정 업무를 수행한다. AI 서비스의 효용은 해당 서비스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이용자가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 업무의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이용자의 잦은 관리와 지시가 요구되면서 그 효용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AI 에이전트(Agent)는 특정한 기능만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닌 복합적인 문제를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AI를 목표로 한다. 고객응대를 위한 AI챗봇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한다. AI챗봇의 가치는 이용자(고객)의 요청에 따른 특정한 업무를 개별적으로 수행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응대 과정에서 유사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절차와 프로세스를 AI를 기반으로 자동화하여 처리하는데 있다.

에이전틱(Agentic) AI는 좀더 고도화되고 자율적인 형태의 AI 에이전트다. 이용자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 및 관련된 업무들을 설계하고 이용자의 감독 및 피드백에 따라 업무를 능동적으로 수행하면서 업무 자율성을 확보한다. 이용자의 건강 및 심리상태를 주기적으로 파악하여 일정한 활동 등을 권고하거나 의료전문가와 상담을 연결하는 역할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건강관리 AI를 예로 들 수 있다.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AI의 자율성은 증대되고 인간의 지시와 개입은 줄어든다.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춘 에이전틱 AI에 의하여 앞으로 더 많은 일상의 서비스들이 제공될지 모른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컴퓨터처럼 에이전틱 AI 역시 우리 일상의 보이지 않지만 어디든 존재하면서 우리 생활의 핵심적인 일부로 스며든 기술이 될 수 있다.

에이전틱 AI 시대의 도래가 임박했지만, 에이전틱 AI의 고도화된 자율성을 고려한 그 법적성격 및 책임에 대한 논의는 초기 단계다. 에이전틱 AI을 그 자율성을 근거로 독립적인 법적주체로 인정할 수 있을지, 그 오동작의 책임주체는 누구인지 등은 선례가 없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다. 유비쿼터스 AI시대를 앞두고 좀더 깊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태영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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