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패션회사의 홍보팀에 있을 때, 남성복 브랜드를 알리며 자주 썼던 단어가 ‘영포티(Young Forty)’였다. 당시에는 그 말이 꽤 세련되어 보였다. 중년 남성도 젊게 입는다는 인식이 새로웠고, 중년 남성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문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가 실제 40대가 되고 보니 그 단어가 어쩐지 불편하게 들린다. 그때의 ‘젊게 보인다’는 말에는 나이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그 글을 읽었던 40대 선배들도 그렇게 느꼈을까?
4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젊게 보이고 싶지도, 다시 20·30대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20대 때는 너무 고단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자기 과시가 온몸에 배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시기라 없는 것들로 어떻게든 나를 꾸미고 있어 보이려 애썼던 것 같다. 30대에는 사회적 성취를 향해 달리는 완성된 인간으로서의 욕심이 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며 취향보단 브랜드와 로고에 더 집착했다. 특정 브랜드의 명함지갑과 가방이 나를 설명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20대보다 보여지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기다.
그러다 40대가 됐다. 나름 20여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제 우리에게 패션은 패션 자체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패션이 젊음을 복제하는 기술이 아닌, 살아온 시간을 입는 취향임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유행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핏과 오래 곁에 두고 입을 수 있는 좋은 소재, 하루를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편안한 옷들이 중요해진다. 내 옷장에 가장 중요한 옷들은 잘 지어진 네이비 재킷과 예쁘게 물이 빠져가며 10년 이상을 함께한 빈티지 리바이스 팬츠, 목이 헤질 것 같은 화이트 버튼다운 옥스포드 셔츠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옷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데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는 벗들도 필요하다. 근래 언론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아이템들이 그런 것일 테다. 나이키의 에어포스원 스니커즈, 뻣뻣한 챙의 뉴에라 모자, 박시한 슈프림 티셔츠, 그리고 사이드로 걸쳐 멘 포터백. 40대의 누군가에겐 이 또한 그동안 느리고 단단하게 만들어 낸 스타일이다. 시간이 만들어준 취향이 묻어나는 옷들이다.
지금의 40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정말 Young이 필요할까. 정말 중요한 건 Young이 아니라 Balance다. 나는 20대 후반, details와 balance를 조합한 ‘detailance’란 단어를 만들어 지금까지 써오고 있다. 인생에도 패션에도 디테일과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릴 땐 디테일에 집착해 무언가를 파내려가는 게 멋이라 믿었지만, 40이 넘고 보니 균형을 잡는 일이 훨씬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젊게 보이기보다 나답게, 화려함보다 단단함으로 균형을 잡는 일. 트렌드를 좇기보다 내 안에 쌓아온 리듬을 입는 것, 그게 지금의 40대 패션이다.
패션은 나이를 감추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빛내는 언어다. 지금의 우리는 젊음을 흉내 내는 세대가 아니라, 세월과 함께 멋을 만들어가기 가장 좋을 때다. 진짜 어른의 패션은 나이를 숨기지 않는다. 꼰대 같은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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