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코리아, 기본이 경쟁력이다 프롤로그 : 미봉과 요식의 역사
1993 서해훼리 292명 사망 그후 21년 재난대응 시계는 멈춤 삼풍 붕괴때도 백서 안만들어
사고나면 부랴부랴 기구 만들고 시간 지나면 人災 또 반복…
매뉴얼대로 했더라면, 초동대응만 확실했더라면, 아니 그보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더라면…. 세월호의 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육지 코 앞에서 수많은 젊은 희생자를 내는 최악의 슬픔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고, 더 화가 난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주범은 ‘원칙을 지키지 않은 우리 사회’다. 우리들 모두 죄인이다. 문제는 계속 반복되는 대형참사를 근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참사가 일어났을때 모두들 경악하고, 재발 방지를 부르짖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수습 과정에선 ‘미봉과 요식’으로 대충 때운 채 말이다.
지난 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인근 바다에서 침몰한 서해훼리호 사고때도 그랬다. 탑승자 362명 가운데 292명이 숨지는 최악의 해난사고에 정부는 일제히 안전점검에 나섰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결국 ‘허언’이 됐다. 21년이 흐른 뒤 터진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래서 더욱 어처구니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세월호의 확인된 사망자ㆍ실종자 수는 서해훼리호의 그것을 수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서해훼리호와 세월호는 운항미숙, 구명보트 불량, 초기신고 후 늑장 대응 등 발생부터 수습과정까지 판박이다. 서해훼리호가 가져다 준 교훈을 잊고 미봉책으로 일관해온 결과다. 서해훼리호 사건때도 해경의 대처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은 “해난사고로 해마다 평균 166척이 침몰하고 200여명이 사망ㆍ실종되는데도 해경이 보유한 해난 구조용 장비는 헬기 1대, 해난구조함 1척이 전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해경은 예산ㆍ장비를 확충하고 사고 예방과 구난 등 ‘민생 해안치안’ 체제로 개편키로 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현장에 나타난 건 100t급 경비정 1척과 헬기 3대 뿐이었다.
이는 해경의 단적인 예지만, 다른 재난당국의 대처도 다를게 없다.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때도 ‘반면교사’를 위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다들 외쳤지만,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정부가 만든 매뉴얼이 3000여개에 달한다지만 체계적인 ‘실행 액션’이 부족했다는 게 세월호 참사의 결론이다.
전문가들은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쳤으면 반복되지 않았을 인재(人災)”라며 “결국 대형 사고 때마다 전시행정과 땜질 처방이 되풀이됐기에 오늘날까지 이런 아픔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대형참사 데자뷔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고에 대한 미봉과 요식행위라는 한국의 안전관련 고질병을 뿌리 뽑고, 원칙을 지키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황윤원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면 부랴부랴 기구나 제도를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게 문제”라며 “다소 시간이 걸려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선진의식을 쌓아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대형참사 후 반복되는 미봉과 요식을 근절하고, 책임자 엄벌과 경종을 울리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동시에 ‘원칙과 기본’에 입각한 재난대처 시스템으로 대수술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것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민심이자, 분노와는 별개의 간절한 소망이다.
김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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