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보름 만에 3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나란히 불어 월간 증가 폭은 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2월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본격적으로 반영됐고, 금리 인하로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안이하게 넘겨선 안된다.

무엇보다 대출금리 하락이 결정적이었다. 코픽스(COFIX)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2.7%까지 떨어지며 2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KB국민은행 신용대출 금리도 3.57~4.57%로 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리 부담이 줄자 대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실제 주담대는 지난달 말보다 1조7000억원 넘게, 신용대출은 1조원 이상 증가했는데 5월 초 연휴로 은행 영업일이 8일에 불과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증가세다.

2월 토지거래허가제가 일부 지역에서 해제되며 매수세가 뒤늦게 반영됐고,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요건 완화로 대출을 활용한 매입이 쉬워진 게 한몫했다. 여기에 최근 미국발 관세 쇼크로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자 대출로 주식에 뛰어드는 ‘빚투’ 수요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신용대출이 주담대 못지않게 느는 등 대출 전반에 과열조짐이 뚜렷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은행이 이르면 이달 중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리 인하는 경기 부양엔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대출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 증가세에 기름붓는 격이 될 수 있다. 지금도 금리 인하 기대만으로 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 실제로 금리가 더 내려간다면 그 파급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규제도 변수다. DSR 3단계는 차주의 상환 능력에 따라 대출 한도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다. 그러나 규제 시행 이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급증은 내수 위축, 금융 불안,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은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실질금리 부담도 여전해 가계의 상환 여력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가계부채의 조기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부채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면, 그만큼 대출 억제를 위한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 DSR 같은 대출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부채에 취약한 구조에서 정책 오판으로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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