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제든 주 4.5일제든 정부 개입 안돼
정년연장, 단계적 계속고용 필요
“최저임금 노사 ‘협상’으로 결정할 대상 아냐”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주 4일제든 주 4.5일제든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양극화 심화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최고지도자과정 회의실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6월 3일 조기대선을 앞두고 거론되고 있는 노동 공약인 근로시간 개편에 대해 “정책 연대를 하고 있는 노동계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나온 공약”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30년까지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주 4.5일제를 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주 4일제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의힘도 월~목요일은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 일찍 퇴근하는 ‘주 4.5일제’를 꺼내 들었다.
허 원장은 “정부가 개입해서 법으로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적어도 은행, 병원 등 공공기관 등은 주 5일은 열어야 한다. 프랑스와 같은 서구 국가도 기업의 경영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시간을 줄이는데 임금 삭감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손실은 기업이 감내해야 한다”며 “이를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년연장, 10%를 위한 일...양극화 심화시킬 것”

‘고령근로자 계속고용(정년연장)’ 문제도 이번 대선의 쟁점이다. 이에 대해 허 원장은 “정년연장은 노동자 10%의 바람일 뿐 역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일”이라며 “오히려 단계적인 계속고용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원장이 제시한 단계적 계속고용제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계속고용위원회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제언과 유사하다. 기업에 고용 의무를 부과해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올리자는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노사 협의로 노동 시간과 직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기업의)선별적인 재고용이 필요하고, 그 다음 단계는 희망자를 재고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은 2016년 60세로 정년연장 이후 오히려 고령근로자 비중이 줄어든 결과를 상기시키면서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50대 초중반에 조기퇴직을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연하지 못한 강제적인 ‘정년 연장’이 외려 근로자를 조기 은퇴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허 원장은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노동정책 과제에 대해 쟁점별로 ▷정년연장 ▷근로시간 규제 ▷최저임금법 차등적용 ▷노조법 2·3조 개정 ▷5인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등으로 정리했다. 그는 “이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표’를 너무 의식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결실을 맺지 못한 이유도 “표를 너무 의식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은 ‘주 69시간제’가 아닌데, 윤 전 대통령이 도어스태핑을 통해 근로시간을 직접 언급하면서 오히려 그 프레임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6월 2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출근길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 “아직 정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불과 하루 전 당시 고용부 장관이던 이정식 장관이 공식 발표한 내용에 대해 전후 사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부인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지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최저임금, 협상으로 결정할 대상 아냐...중대법 개편 필요”
특히 허 원장은 새 정부 집권 이후에는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은 협상을 통해서 정하는 것이 아닌 거시경제적 효과를 가늠하고 설정해야 하는 가격변수”라며 “개별사업장 임금 협상을 두고 협상해서 정하는 것 아니냐고 묻겠지만 기업의 성과라는 테두리 안에서 협상하는 것인 만큼 그것이 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의 테두리를 벗어나 협상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사회적 최소기준(national minimum)을 정하는 것으로, 과도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필요성에 관해서 허 원장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두고 보면 상황이 개선되거나 개선 방향을 찾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시행한 지 3년이 지났고, 그 적용 대상이 확대된 만큼 상황에 따라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안전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자가 없을 경우 사업주가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7일엔 중처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다만 중소기업들은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법적 의무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집권당이었다면, 노란봉투법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
지난 정부 국회에서 통과됐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허 원장은 “민주당이 집권당이었다면 다수 의석을 이용해 노란봉투법을 그렇게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여당이 될 경우 개정안을 재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와 노동자 대상 사용자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 원장은 “(민주당은)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안을 통과시킨 것”이라며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줘야 이해조정이 가능한데 지금까지는 갈등만 부추긴 것”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와 고용주’ 사이 사회갈등을 심각하게 느끼는 이가 66.4%에 달한다는 통계청의 ‘2024 한국의 사회지표’ 결과에 대해 “여성들의 가치관이 변화했는데 남성들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남녀 성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5년의 대한민국 근로자는 과거 60~70년대의 근로자가 아닌데, 고용주는 아직 ‘가부장적 생각, 내가 만든 회사는 내 회사, 내 회사는 내가 무슨 의사결정이든 해도 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사장님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정치가 기득권을 오히려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면 시간이 흘러도 교정되지 못할 것”이라며 “요즘 MZ를 보고 40·50대보다 보수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허위의식을 탈피하는 세대이자 상식을 복원하는 세대라고 본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