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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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40여 일째 고단한 삶을 버텨내고 있다.

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경북 안동시 길안면의 길안중학교 강당에는 지난 3월 말부터 어르신 57명이 이재민 텐트에서 숙식 중이다.

전날 오전 7시쯤 ‘경북 산불’ 이재민 임시 거처인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 강당, 산불 피해 이후 이곳에서 생활해온 금 모(78) 할머니는 “6·25 전쟁 이후로 인생 두 번째 피난”이라며 “혼이 다 빠져서 기도 안 차니더(찹니다)”라고 말했다.

금 할머니는 “가족사진은 물론이고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탔다”며 “작은 물건일지라도 평소 쓰던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고 했다.

15년 전 서울서 퇴직 후 연고 없이 안동으로 귀농한 김 모(73) 씨 부부의 작은 벽돌집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텔서 생활 중인 김 씨 부부는 이날 길안중학교 강당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다 타버린 사과밭으로 가던 중이었다.

김 씨는 “마냥 정부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어서 우선 자비로 집 공사를 시작했다”며 “전소 피해자 보상 기준을 면적으로만 잡아서 규모가 큰 오래된 패널 집과 비교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어 “비록 작은 집이었지만 1년에 재산세를 18만 원가량 냈다”며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뒤죽박죽 보상 체계”라고 말했다.

이달 중 임시 거처에서 임시 주택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그마저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청송군처럼 철거한 집터에 임시 주택을 세우는 게 아닌 마을 한 장소에 한데 모으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금 할머니는 “내 나이가 여든인데 어떻게 집을 새로 짓겠느냐”며 “임시 주택 거주 기간이 끝나면 그 컨테이너(임시 주택)를 사야 하는데 그때 또다시 이사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금 바로 내 땅에 임시 주택을 세워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모(55) 씨도 “불이 난 피해자 입장에서 일을 처리해줘야 하는데 너무 행정편의주의로 절차가 돌아가고 있다”며 “이동식 주택을 철거한 자기 집 원래 자리에 갖다 놔달라고 많은 주민이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다 되어 가는 피난은 바로 옆 동네 임하면에서도 이어졌다.

임하면 복지센터에는 어르신 33명이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이재민들은 임시 거처 맨바닥에 비닐과 이불을 깔고 생활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밥차가 오는 길안중학교 대피소와 달리 이곳에서는 매 끼니를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복지센터 주변에는 ‘생색내기 전시행정 집어치우고 실질적 피해 대책 수립하라’라거나 ‘한 끼 밥보다 3월 25일 이전으로의 일상 회복을 요구한다’는 주민 플래카드가 걸렸다.

모두가 집단 수용소 같은 대피 생활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임시주택으로 가길 바랐다.

임 모(81) 할아버지도 44일 전 불바다로 변한 당시 마을 상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임 할아버지는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었다. 해방, 6·25, 월남전을 겪었는데 경북 산불이 훨씬 심각했다”라며 “밤하늘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붉게 변해 타들어 가는 건 처음 봤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경북 산불로 대피했던 5350명 중 대피를 이어가는 이재민은 640세대 980명이다.

이들은 길안중학교, 마을 경로당 42곳, 마을회관과 교회 6곳, 이동주택 13곳 등에서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안동시가 마련할 계획인 임시 주거시설은 이동주택, 공공임대, 모듈러(조립식 주택) 등 총 1048개 동이다.

지난 7일 기준 임시 주거 시설 213개 동에 이재민들이 입주를 마쳐 입주율 20.3%를 보이고 있다.


rainbo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