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늙고 가난한 여성의 삶] ②

폐지·폐품 주워 생계 꾸리는 노인들

폐지노인 평균 78.1세…절반이 여성

가정만 돌보던 여성의 유일한 일자리

[편집자 주] 국내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노인의 삶은 더 곤궁하다. 여성 노인들은 오랜 시간 ‘가족 돌봄’에 헌신하길 요구받았고 집 밖에서의 경력을 내려놔야 했다. 이 경력 단절은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고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했다. 나이 든 그들은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헤럴드경제는 여성 노인의 젊은 시절 헌신이, 시간이 지나 가난과 불안으로 ‘청구’되는 구조를 조명했다.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의 한 자원순환시설 앞에서 고순옥(80, 가명) 씨가 리어카를 밀고 있다. 그는 수레를 인도에 올릴 힘이 없어, 위태롭지만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다닌다고 했다. 이영기 기자.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의 한 자원순환시설 앞에서 고순옥(80, 가명) 씨가 리어카를 밀고 있다. 그는 수레를 인도에 올릴 힘이 없어, 위태롭지만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다닌다고 했다.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사람이 죽을 수는 없는 거야.”

한 80대 고령 여성이 후들거리며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에 나타났다. 리어카에는 캔과 프라이팬 등 고철이 가득 든 포대 두 자루가 얹어져 있었다. 두 자루는 곧 만원으로 계산됐다.

여성은 몸과 손을 심하게 떨었다. 당뇨와 고지혈증 때문이라고 한다. 명절을 앞둔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한 자원순환시설 앞에서 만난 그는 “어떻게든 살아야지…죽을 수는 없는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약하고, 배우지 못한 고령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생계 수단은 많지 않다. 그래서 떠밀리는 곳은 ‘폐지 수집’이다.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가장 최근 조사인 보건복지부의 2024년 ‘폐지 수집 노인 지자체 전수조사’에 따르면 폐지를 모으는 노인의 평균 연령은 78.1세, 여성의 비중은 55.3%로 남성보다 많았다. 리어카 무게를 합쳐 수십㎏를 끌고 다니는 고된 노동인 폐지 수집을 ‘고령 여성’들이 맡고 있던 것이다.

떠맡게 된 손자들, 병상 누운 남편…폐지라도 주워야 하는 그들

① 남편 잃고, 아들 잃어…끝없는 가정 돌봄과 육체노동

지난 22일 은평구 자원순환시설에서 만난 고순옥(80, 가명)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삶의 시름을 조금은 덜었어야 할 노년기지만, 순옥씨는 여전히 가정 돌봄과 육체노동의 굴레에 묶여 있다.

그는 유모차를 개조한 손수레를 밀며 나타났다. 수레가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은 폐지가 쌓여 있었다. 차도를 역주행해 오던 그는 “도저히 인도로 밀고 올라갈 힘이 없어서 위험하지만 차도로 다닌다”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3700원. 순옥 씨가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폐지를 수집해 얻은 대가다. 그와 두 손자가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60여년 전, 21살 순옥 씨는 4살 연상 남편과 상경했다. 별다른 기술과 지식이 없던 부부는 건설 현장에서 건설 자재를 나르는 ‘곰방’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첫 직업이었다.

그러면서 둘은 첫째로 아들을, 그 뒤로 딸 둘을 얻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다섯 식구는 작은 집에서 복작복작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언젠가는 번듯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벅찬 날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한 자원순환시설 앞 도로 위에 고순옥 씨가 위태롭게 서있다.이영기 기자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한 자원순환시설 앞 도로 위에 고순옥 씨가 위태롭게 서있다.이영기 기자

기대는 초라하게 끝났다. 순옥 씨가 마흔이 되던 해 남편이 세 자식을 남긴 채 떠났다. 그 후 순옥 씨는 곰방 일을 계속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60대 들어서는 몸이 따라주지 않자 빌딩 청소부로 자리를 옮겼다. 순옥 씨가 얻은 두 번째 직업이다. 국민연금은 붓지 못했다.

그렇게 75세까지 여기저기 빌딩을 옮겨 다니며 청소를 했다. 그마저도 못 하게 돼서야 집 주변을 돌며 폐지를 줍고 있다.

그 사이 두 딸은 먼저 가정을 꾸리고 손자를 낳았다. 늦게까지 결혼을 못 했던 아들도 베트남 며느리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 순옥 씨는 그동안 아득바득 모은 돈으로 마련한 연립주택 1채에서 이제 걱정 없이 늙어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기대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지병을 앓던 아들이 지난해 가족 곁을 떠났다. 베트남 며느리도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며 손자 둘을 두고 떠났다. 순옥 씨는 다시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맡아 기르고 있다.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한 달에 많아야 20만원, 거기에 기초연금 등 45만원 남짓을 보탠 게 월소득이다. 두 손자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주민센터 복지과에서 손주들이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알고 보조금을 준다. 2명 앞으로 매달 120만원이다.

순옥 씨는 기자에게 “젊은이는 돈 벌어서 늙으면 편하게 살아”라며 “나도 맨날 우리 손주들한테 할머니가 늙은 날까지 이렇게 희생하고 사니깐 느그들은(너희는) 아주 열심히 벌어서 편안하게 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② 남편 병상 눕자…60살 주부, 생활 전선으로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한 자원순환시설에서 만난 양경자(82, 가명) 씨가 보여준 폐지 값. 66㎏를 수집해 2640원을 받았다. 정산서를 펴서 보여주는 경자 씨의 오른손에는 1000원이 쥐어져 있다. 이영기 기자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한 자원순환시설에서 만난 양경자(82, 가명) 씨가 보여준 폐지 값. 66㎏를 수집해 2640원을 받았다. 정산서를 펴서 보여주는 경자 씨의 오른손에는 1000원이 쥐어져 있다. 이영기 기자

이날 양경자(82, 가명) 씨도 만났다. 경자 씨는 줄곧 주부로 지냈다. 25살에 충남 당진에서 은평구 응암동으로 상경했다. 목수였던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아들 둘을 키우고 응암동에 집도 마련했다. 아들들도 속 썩이지 않고 결혼해 손자 셋을 낳았다. 걱정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경자 씨는 60살이 되던 즈음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남편은 허리 협착이 심해 일찌감치 일을 접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 큰 목돈이 필요하게 됐다.

경자 씨는 40년 넘게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던 주부였다. 갑자기 뛰어든 생활 전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오전 4시에 차를 타고 밭에 나가는 일을 소개받았다. 그는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있으니 퇴근할 때 허리가 말도 못 하게 아팠다”며 “도저히 허리를 펼 수 없어서 팔다리로 계단을 기어 올라갔다”고 회상했다.

몸이 버티지 못했다. 경자 씨는 농사 인부는 금방 그만두고 지금의 폐지 수집 일을 시작했다. 경자 씨가 폐지를 주운 지는 20년이 다 돼간다고 했다. 가정 이루고 60년 쉼 없이 주부로, 농사 인부로, 폐지 수집 노인으로 일했지만 제도 내에서 일을 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은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기자가 경자 씨를 만난 날 그는 폐지 66㎏을 막 팔고 나오던 참이었다. ㎏당 40원으로 계산해 경자 씨는 손에 2640원을 쥐었다. 새벽부터 5시간 동안 폐지를 모아 번 돈이다.

양경자 씨의 수입 및 지출 내역을 재구성한 표 [AI로 제작]
양경자 씨의 수입 및 지출 내역을 재구성한 표 [AI로 제작]

오전 폐지 수집을 마치면 집에 들어가 남편의 점심상을 차린다. 경자 씨도 함께 한술 뜨고, 오후에 다시 한 바퀴를 돈다. 그가 오전·오후 하루 꼬박 폐지를 수집해 버는 수입은 6000원 정도라고 한다. 한 달에 많아야 15만원 남짓. 노부부 앞으로 나오는 기초연금 50만원을 합쳐 월소득은 65만원이다.

경자 씨 부부는 다행히 자가 주택에 살기에 주거비는 들지 않는다. 보험비와 가스비 등 공과금은 아들들이 내준다.

수시로 들어가는 병원비가 골치다. 남편의 허리 협착 주사는 1회 9만원인데, 최근 4번이나 맞았다. 또 얼마 전 갑자기 간 초음파와 골밀도 검사를 했다. 경자 씨는 고관절과 무릎 통증이 심해 수시로 받는 물리치료 비용(1회 5900원)도 부담스럽다. 다 쓰고 남은 돈은 식비로 쓴다. 적으면 적은 대로 아껴 쓴다고 한다.

경자 씨는 명절이 다가와 손주 볼 생각에 반갑다면서도 용돈 한 푼 챙겨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제는 나빠지지 말고, 이대로 조금만 살다가 어디 아프지 말고 밤에 자다가 가면 나도 복이고 우리 자식들도 복이니 그것밖에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20k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