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자 지정만으로는 보험금 안전 보장 못 한다
보험금청구권 신탁, 목적에 맞게 나눠 지급 가능
미성년·장애자녀·손자녀 증여 등 활용할 수 있어
기존 보험도 나이 상관없이 조건 맞으면 가입 가능
신탁사 선택 시 전문성·안정성·컨설팅 능력 따져야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보험료는 약 490만원(2022년·보험개발원). 매달 성실하게 내는 돈을 더 값지게 쓰기 위해. ‘이’왕 낸 ‘보’험료를 ‘소’중한 우리 인생에 [이보소]
![발달장애 아들을 위해 보험금, 어떤 방법으로 아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8/news-p.v1.20250426.8230f55083714def940f566fcc7033e8_P1.jpg)
40대 직장인 박정수 씨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그는 종신보험으로 5억원의 사망보험금을 준비하고 있지만, 최근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만약 아들 앞으로 사망보험금이 일시금으로 들어간다면, 주변에서 그 돈을 노리는 이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보험금을 마련하면서도, 과연 이 돈이 아들의 삶을 지켜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장애가 있는 아들, 내가 떠난 후에도 편히 살 수 있을까”
보험은 남겨진 가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보호 장치다. 발달장애 아들을 둔 정수 씨는 본인이 사망한 뒤 홀로 남겨질 아들을 걱정한다. 하지만 더 큰 고민은 그 아이를 위해 준비한 보험금이 자칫 엉뚱한 곳에 쓰이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보험금을 대신 청구하고, 목적에 맞게 지급하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수 씨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아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종신보험 수익자를 제 아들로 지정해 뒀고, 제가 세상을 떠나면 보험금은 아들한테 가는 게 아닌가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직 미성년자라면 보험금을 직접 받을 수는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법정대리인이 대신 보험금을 청구하고 관리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돈이 꼭 아들의 삶에 쓰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법정대리인이 누구냐에 따라, 돈이 전혀 다른 데 쓰일 수 있거든요. 게다가 기존에는 보험의 피보험자가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을 상속인 또는 수익자에게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고인이 남은 가족들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지급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고, 자산관리가 어려운 수익자의 경우 보험금 관리 또는 보호가 어렵죠. 게다가 법정대리인이 자녀 몫의 보험금을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가족이 아닌 제3자가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돼 돈을 관리할 수도 있죠. 단순히 수익자 이름만 적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보험금이 어떻게 쓰일지까지 설계해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죽은 뒤를 걱정해서 돈을 남기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보험금을 의도대로 쓰이게 할 방법이 있는 걸까요?
이럴 때 보험금청구권 신탁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나라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사회안전망 구축과 국민의 안정적인 자산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사망보험금에 대해서도 신탁할 수 있는 재산으로 인정했습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보험사의 종신보험과 같은 사망보장 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신탁사와 보험금청구권 신탁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고객 사망 시 신탁사가 고객의 뜻에 따라 운용·관리해 지정한 상속인(직계존비속, 수익자)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보험금 청구 권한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것이죠. 보험금 수익자는 그대로 두고, 대신 신탁회사가 보험금을 받아 목적에 맞게 나눠주는 겁니다.

위 그림과 같이 계약자는 보험사와 사망보장 보험에 가입한 후 사망보험금에 대한 청구권을 신탁사에 맡기는 신탁계약을 맺습니다. 이후 계약자가 사망하게 되면 사망보험금은 신탁사로 지급되며 신탁사는 정기예금 등 안정적으로 고객과 계약한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계약자가 지정한 수익자에게 보험금(원금과 이자)을 지급합니다.
신탁이라고 하니까 뭔가 어려워 보이는데, 일반 신탁이랑 뭐가 다른 건가요?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일반 신탁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일반 신탁은 현금, 부동산 주식, 같은 자산을 맡겨서 운용하거나 증여·상속할 수 있게 하는 구조죠. 이에 반해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보험금 청구 ‘권한’만을 맡기는 구조입니다. 보험금 자체가 아니라 ‘이 돈을 누가 받아서 어떻게 쓸 것인지’를 설계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보험에 ‘사용 설명서’를 붙이는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반 신탁처럼 복잡한 운용이나 자산 이전은 없고, 보험 가입자라면 비교적 간단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가족이 이런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신탁이 필요한 가족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정수 씨처럼 발달장애 자녀를 둔 경우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더라도 스스로 자산을 관리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엔 부모가 생전에 ‘얼마를, 언제, 어떤 용도로 지급할지’를 미리 정해두는 게 가장 안전한 설계가 됩니다.
미성년 자녀를 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대리인이 보험금을 대신 청구하고 관리하게 되기 때문에 부모의 의도대로 돈이 쓰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손자녀에게 증여를 고민 중인 조부모라면 어떨까요? 자녀 2명, 손자녀 5명이 있는 70대 조희래 씨는 본인에게 많은 사랑을 전하는 손자녀들에게도 재산을 증여하고 싶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손자녀에게 바로 증여하기보다는, 그 재원으로 보험에 가입해 훗날 보험금으로 손자녀들에게 지급하고자 했죠. 이때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활용해 일정 시점부터 또는 특정한 조건에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급 방식을 설정할 수 있나요?
지급 방식은 ‘언제’, ‘얼마를’, ‘무슨 조건으로’ 줄 것인지 등을 정할 수 있어 꽤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대표 사례인 정수 씨처럼 보호가 필요한 가족을 위해 단계별로 지급 시나리오를 짜놓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수 씨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이런 구조를 설정했습니다. 아들이 미성년일 때 매월 300만원씩 생활비로 지급하고 ▷만 20세가 되는 생일에 1억원 ▷만 25세에는 1억원을 지급 ▷결혼할 경우 남은 보험금 전액을 지급 등으로 말이죠. 손자녀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70대 희래 씨의 경우 손자녀 5명에게 본인의 기일이 속한 달마다 각각 100만원씩 10년간 지급하도록 설정했습니다.
그 외에도 상속세 납부서류 제출 시 상속세만큼 지급하거나 대학교 졸업 증명서 제출 시 1억원 지급, 재직증명서 제출 시 분할금 전액 일시 지급 등 지급 조건을 신탁 계약서에 반영해 미래에 지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계약자의 연령 제한도 있을까요?
연령 제한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보험계약자의 나이가 만 80세 이상인 경우에는 몇 가지 추가 조건이 필요합니다. 계약자의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이 충분한지를 확인해야 하므로 병원이나 유관기관에서 발급한 정신감정서를 제출해야 신탁 계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계약 내용을 변경하거나 해지할 수도 있나요?
계약자가 살아 계신 동안에는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습니다. 신탁 계약을 바꾸거나 해지하는 데 추가 비용은 들지 않고 수익자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수익자를 바꾸거나, 지급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계약자가 사망한 이후에는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계약자가 생전에 설정한 내용대로 보험금이 지급됩니다. 이는 사망 후에도 계약자의 뜻이 그대로 실행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예전에 가입한 보험으로도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설정할 수 있나요?

오래전에 가입한 보험이라도 조건만 맞으면 신탁 계약이 가능합니다. 먼저 사망보험금이 3000만원 이상이어야 합니다. 단, 주계약이 아닌 특약 형태로 설정된 사망보험금은 신탁 대상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보험계약대출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대출이 있다면 해지한 뒤에 신탁 계약을 맺어야 하고, 신탁 계약 이후 대출을 받으려면 신탁부터 먼저 해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험에 가입한 사람(보험계약자), 보험의 대상이 되는 사람(피보험자), 그리고 신탁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신탁계약자)은 모두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역할을 한 사람이 모두 맡고 있어야 신탁 계약이 성립합니다. 또한, 수익자는 계약자의 부모, 자녀, 손자녀처럼 위아래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 또는 배우자까지만 가능합니다.
수익자가 여러 명이면, 지급 비율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2명이 있다면 큰 아이는 대학 진학 자금이 필요해서 앞당겨서 일시금을 지급하고, 둘째에게는 생활비로 나눠 쓰게 하기 위해 ‘월 지급 방식’으로 설정하는 등 수익자마다 지급 시점·금액·방식 모두 다르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큰 아이에게 70%, 둘째에게 30%처럼 비율을 나눠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생소한 경우이지만 1차 수익자를 배우자, 2차 수익자를 자녀로 연속해 수익자를 지정한 뒤 배우자가 보험금의 원리금을 받다가 사망할 경우 자녀가 다음 수익자가 돼 원리금을 받도록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더불어 연속적으로 다른 수익자로 지정도 가능하며, 모두 계약자의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여야 합니다.
만약 신탁 수익자가 사망하면 보험금은 어떻게 되나요?
보험금청구권 신탁에서는 수익자 사망 시 ‘후순위 수익자’를 정해두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미리 정해둘 수 있습니다.
예컨대 수익자가 사망하면 남은 보험금은 다른 수익자에게 넘겨주기, 또는 수익자의 자녀에게 승계하도록 설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약 2차 수익자가 없다면 1차 수익자의 법정상속인에 남은 보험금의 원리금이 지급됩니다.
결국 신탁사를 어떤 곳으로 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선택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신탁사는 꼭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사망 이후 실질적인 보험금의 관리 업무가 신탁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신탁사를 고를 때에는 크게 ▷전문성 ▷재무적 안정성 ▷컨설팅 능력을 살펴봐야 합니다. 보험계약 구조나 지급 설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제대로 된 신탁 구조를 짜기 어렵습니다. 또한, 수년 동안 보험금을 나눠서 지급해야 하므로 규모와 자산의 건전성도 중요합니다. 가족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지급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계약 전 상담을 제대로 해주는 곳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p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