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폭력 가을·겨울보다 많아
#. 열대야가 계속되던 8월초 밤, 택시기사 이모(36) 씨는 손님으로부터 흠씬 두들겨맞았다. 당시 승객은 택시비를 내지 않고 하차해 기사 이 씨와 시비가 붙은 상태였다. 말다툼을 하던 승객은 곧이어 주먹과 발로 이 씨를 수 차례 때렸다. 폭행으로 손가락이 부러진 이 씨는 승객을 상대로 “치료비 포함 4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과정에서 승객은 “이 씨가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 더위를 식히려 잠깐 내린 것”이라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남부지법은 기사 이 씨가 승객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객이 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연일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위를 이기지 못해 사소한 일에도 주먹다짐을 하는 ‘폭염범죄’가 늘고 있다.
9일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연간 폭력범죄의 27%인 6만3762건이 여름철인 6월부터 8월 사이에 발생했다. 이는 겨울철(12월~2월)보다는 1.2배, 가을철(9월~11월) 보다는 1.1배 많은 건수다.
해외에서도 더위와 폭력범죄 간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는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2013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온도가 2℃ 오를 때마다 개인간 범죄는 15% 늘어나고, 집단 분쟁은 지역에 따라 50% 이상 늘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최근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연구팀도 “고온현상이 인간의 자제력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려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며 냉방기와 관련한 분쟁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례적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월 말, 시내버스 기사 김모(60) 씨는 승객에게 얻어맞았다. 승객 박모(70) 씨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운전하는 김 씨의 옆구리를 수차례 찌르고 때렸다. 조사결과 승객은 냉방기를 틀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씨를 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 김진철)는 운전자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승객 박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징역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운행중인 차량 운전자를 폭행한 것은 추가 사고 등 교통 위험을 초래하고 제 3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한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냉방기 소음으로 이웃 간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충북 당진에서 돼지농가를 운영하던 조모(56ㆍ여) 씨는 냉방기 소음으로 이웃과 법정까지 선 사례다. 조 씨는 지난 2014년 7월 이웃 송모(47) 씨와 축사 내 환풍기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송 씨는 조 씨를 찾아와 환풍기 소음에 대해 항의했고, 들고있던 쇠붙이로 환풍기를 내리쳐 부쉈다. 한달 뒤 조 씨가 송 씨의 집을 찾아가자, 송 씨는 욕설을 하며 조 씨를 폭행했다. 조 씨는 “폭행으로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고, 환풍기가 부서져 돼지 3두가 더위로 폐사했다”며 송 씨를 고소했다. 대전지법은 “송 씨가 환풍기를 틀지 않으면 돼지가 더위로 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송 씨가 환풍기를 부순 혐의(재물손괴)에 무죄를 내렸다.
고도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