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출신 미술인들 제39회 정기전 ‘치유와 회복의 미학’

[헤럴드경제=박대성 기자] 예술은 종종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시대를 기록한다. 말보다 앞서고, 때론 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스며들며,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올해 제39회를 맞은 국내 최장수 미술그룹 ‘누리무리‘는 그러한 예술의 진심을 오롯이 증명해 온 집단이다. 오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G&J갤러리 인사아트 3층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전남 순천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미술 작가들이 수도권과 해외로 뻗어가며 이룬 이 연대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동시대 한국 미술사의 궤적 속에 굵은 선을 그어왔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누리무리는 매해 빠짐없이 정기전을 이어오며, 예술의 본령을 지키고, 시대의 숨결과 호흡해 왔다.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입니다.” 조광익 회장의 이 짧은 말은, 이번 정기전이 단순한 창작의 나열이 아니라, 시대와의 깊은 대화임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16인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언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합창을 이룬다. 그러나 이 합창은 웅장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고, 담담하게 다가온다. 마치 관객의 어깨에 가만 손을 얹듯, 혹은 깊은 밤 묵묵히 창가에 놓인 한 권의 책처럼 말이다.
각 작품은 작가의 내면을 통과해 온 시간의 결을 담고 있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간은 사적이지만, 예술 안에서 그것은 공적 감정이 된다. 고통과 희망, 실망과 기다림,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결심. 그 모든 것은 누리무리의 작품 안에서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회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회복은 단지 아픔을 덮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기억하며 나아가는 힘을 뜻한다. 그 힘은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존엄, 연대, 그리고 삶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다.
누리무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작은 거인’ 같은 존재였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보다는 묵묵히 작품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조용히 관객의 마음에 닿기를 바랐다. 그 진정성이야말로 이 그룹이 40년 가까운 세월을 한결같이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다.
전시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이번 누리무리 정기전을 찾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언저리에서 작은 떨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언어 ‘함께 견디자’라는 말 없는 손짓일지도 모른다.
2025년 봄, 우리는 다시 예술 앞에 섰다. 고단한 시간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누리무리의 예술이 들려주는 조용한 노래는, 바로 그 믿음의 증거다.
그것은 단지 작품이 아니라, 생의 기록이며, 위로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우리는 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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