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실질금리 1%대 시대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한 양적완화 기조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인하도 현재진행형이다. “금리가 쪼까 내려서 15%밖에 안된다”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세상은 아쉽지만 아득한 과거일 뿐이다. 저금리 기조는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냉혹한 현실이 됐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자들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처 발굴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채권시장에서 연기금, 보험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우량기업 이외의 회사채 투자에는 몸을 사린다. 공모시장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고 사모시장은 발달하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관투자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채권 상품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상품은 비우량등급(BB이하)의 하이일드 채권과 해외기업들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아리랑(원화), 김치(외화) 채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비우량등급과 해외기업 채권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선진 프로야구의 표준이 된 건 체계적인 마이너리그 시스템과 다양한 해외 선수들이 있어서다.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전 세계 하이일드 채권의 70%를 차지한다. 우량채권 뿐만 아니라 비우량등급 채권의 안정적인 수요처이자 전 세계 주요기업들이 최우선적으로 발행을 희망하는 시장이다. 물론 미국도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1988년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 당시 극심한 수요부족과 채권금리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공신력있는 기관투자자들을 ‘적격기관투자자(QIB:Qualified Institutional Buyer)’로 지정하고 증권발행 시 증권신고서 제출의무를 면제하는 등의 혜택을 통해 채권시장 진입 문턱을 대폭 낮췄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위에 증권회사와 기관투자자들의 탐험가 정신이 더해졌다. 당시만 해도 하이일드 채권이나 글로벌 채권 투자는 위험수준이 검증되지 않은 미개척지였다. 그러나 메릴린치와 살로먼 브라더스 등 증권사들은 앞장서서 새로운 기업을 발굴했고 캘리포니아 연기금(CalPERs), 피델리티 등 기관투자자들도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사적 자본시장의 글로벌 성장추세에 맞춰 그 동안 유명무실했던 QIB시장(2012년 도입)이 채권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재건축했다. 발행기업의 범위를 총자산 2조원미만 기업까지 대폭 확대하는 한편, 간소화된 기채설명서로 증권신고서를 대체하는 등 발행편의성을 높였고 은행, 증권, 보험 등 기관투자자에게는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중이다.
자, 이제 멍석은 깔렸다. 시장이 나서야 할 때다. 채권시장을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새로운 도전을 과감히 수행하는 이들에게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지도를 바꾼 포르투갈 선단과 같이 우리 채권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나갈 탐험가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증권·파생서비스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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