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함정의 건조를 한국 등 동맹국에 맡기는 걸 허용하는 법안이 미 의회에서 발의됐다. 무섭게 함정 수를 늘리는 중국에 해군력이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대응 속도를 높인 것이다. 한국 조선업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특히 미국의 관세전쟁에 무방비 상태인 우리로선 유리한 통상환경 조성은 물론 한미간 경제·안보 협력을 높일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은 60여년 만에 군함 건조 시장을 개방하게 된다. 1965년과 1968년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따라 미국은 자국 조선소에서만 군함을 건조하도록 제한해왔다. 그러나 자국 산업 보호가 오히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건조는 물론 수리 능력마저 떨어진 상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0년간 구축함 23척을 건조한 반면, 미국은 11척에 그쳤다. 순양함도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건조했지만, 미국은 한 척도 만들지 못했다. 다급해지자 군함 건조부터 동맹국에 맡길 수 있게 규제를 풀기로 한 것인데, 상·하원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당에서 발의돼 의회 통과도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에는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국가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맡길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비용이 미 조선소보다 낮아야 하고, 미국 군함을 제조할 외국 조선사는 중국 소유이거나 중국 투자를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해 함정을 만들 역량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특히 한국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함께 비용과 시간에서 경쟁력이 있다. 실제 HD현대중공업이 지난해 건조한 정조대왕함은 미국 이지스 구축함과 비슷한 사양으로 건조 비용은 절반, 기간은 3분의 1로 줄였다. 1년에 3척 이상 건조가 가능하다. 현재 미국이 원하는 대로 신속하게 함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역량은 한국이 일본을 크게 앞선다.

한국 조선업에는 새로운 기회다. 미 해군은 기존 295척에서 390척으로 함정 규모를 확장할 계획으로 1조750억달러(약 1560조원)가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군함 유지·수리·정비(MRO) 사업 수주 전망도 좋다. 산업적 호기를 넘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압박에 대한 협상용 카드로도 활용 여지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타격이 불가피한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우리 주요 수출산업에 대한 통상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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