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상범 기자]#1. 2008년 10월 A(31)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입주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6명이 숨졌다. 특별한 직업 없이 공사판을 전전하던 A 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 조사에서 뜬금없이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말했다.
#2. 지난 8월 경기도 의정부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B(39) 씨가 갑자기 흉기를 휘둘러 시민 8명이 다쳤다. 전철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B 씨가 느닷없이 휘두른 흉기에 날벼락을 맞았다. B 씨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10여 년 동안 일정한 직업이 없이 공사판을 떠돌아다녔고, 40대를 앞두고 있지만 가정을 이루지 못 한 채 타인과 고립된 삶을 살아왔다.
#3. 같은달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다. C(30) 씨가 “직장에 다닐 때 내 험담을 하고 이용만 한 뒤 결국 퇴사하게 만들었다”며 전 직장 동료 두 명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C 씨는 퇴사 후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틀어박혀 전 직장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는 2004년부터 연락을 끊고 살아온 C 씨가 검거 당시 가진 것은 현금 200원과 4000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뿐이었다. C 씨는 경찰조사에서 “생활고에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려고 했으나 혼자 죽으려니 억울했다”고 진술했다.
위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적 외톨이들에 의한 범죄라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부모와 연락을 끊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으며 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 싱글, 그 중에서도 사회에서 소외된 ‘고립형 싱글’들이 피해의식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외톨이, 면식 없는 상대에게 분풀이=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무차별 범죄의 개념과 특징’ 논문에 따르면 비면식 관계 피해자를 상대로 한 살인은 1994년 197명에서 2010년 372명으로 7년새 2배가량 늘어났다. 비면식 관계 피해자 상해 사건도 1995년 1만4504명에서 2010년 5만7238명으로 6년간 4배 가량 증가했다.
범죄 동기 없이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0년까지 5년간 ‘우발적ㆍ현실불만’에 의한 강력범죄(흉악사범 및 폭력사범)는 17만6235명에서 19만7209명으로 11.9% 증가했다. 이 가운데 살인ㆍ강도ㆍ강간ㆍ방화 등 흉악사범은 같은 기간 5150명에서 7999명으로 55.3%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묻지마 범죄의 상당수가 사회에서 고립된 ‘고립형 싱글’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묻지마 범죄자의 경우 ‘신체나 정신적 장애 등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했거나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아왔다’고 범행동기를 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도 “소위 묻지마 범죄자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던사람들이 많다”며 “자신의 처지를 불특정한 타인에게 돌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B 씨의 경우 중학교 중퇴 후 친구는 물론, 직장동료들에게도 따돌림이나 무시를 당하는 등 주변에 사람이라곤 일흔의 노모가 혼자였다. 그마저도 돈을 벌기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2~3년에 한번 고향집을 방문할 정도로 B 씨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그 흔한 휴대폰도 B 씨는 갖고 있지 않았다.
▶관계부재의 사회, 공동체 의식을 부활시켜야=전문가들은 ‘고립형 싱글’들에 의한 묻지마 범죄는 사회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묻지마 범죄’라고는 하지만 이유 없는 범죄는 아니다”라며 “현대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연결고리와 유대감이 약화됐고 사회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잃을 것이 없다, 사회가 나에게 해준 것이 뭐냐’라는 심정이 순간의 자극으로 인해 범죄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부연구위원도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관계성의 부재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관계 요인을 중시하는 공동체 의식을 부활하지 않는다면 관계성의 부재로 인한 무차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대인 관계에 중요한 의사소통 기술을 훈련하고, 사회적 지지와 친밀감 형성을 위해 필요한 자아 개방, 관계에서의 학습, 관계에서의 갈등 해결 등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피의자들을 면담하다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라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예방의 차원에서 경찰뿐만 아니라 복지부 등 관련기관들이 사회적 외톨이들에 대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종합적인 상담 및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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