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수 은행장 씨티맨 하영구의 ‘뱅커스토리’
전세계 무대로 뛰는 사업가 되고 싶어 서울대 무역학과 입학…졸업후에 MBA과정 밟으러 미국 유학
81년 청운의 꿈 안고 돌아왔지만 국내기업들은 내 MBA경력 인정 안해줘…인정해 주는 씨티은행서 32년 행원외길 첫발
부동산PF·퇴직연금 등 다들 뛰어든 분야 끝까지 손안대…조직 구성원들 “경쟁서 우리만 처지는 느낌” 이라고 말할때 정말 가슴이 먹먹…
외국자본에 대한 흑백논리로 싸잡아 매도할땐 힘들어…한국기업, 그중에서도 ‘히든기업 글로벌화’ 한국씨티은행 든든한 지원군될 것
“직원들이 성과를 잘 내줬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에게 감사해야죠.”
‘최장수 은행장’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말 그대로 ‘모범답안’을 내놨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랬다. 손을 대면 베일 듯이 반듯한 헤어스타일에서 풍겨 나오는 모범생 이미지 그대로였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을 만나 그의 뱅커 인생을 들어봤다.
치열한 내부 경쟁과 외압으로 오래 지키기 힘든 것이 은행장 자리다. 그 자리를 12년가량 지켜왔다면 무언가 특별한 ‘비기(秘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기대를 하 행장은 인터뷰 내내 무너뜨렸다.
하지만 특별함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부지런한 편이긴 하죠”라고 슬쩍 던진(?) 그의 말이 오래도록 하 행장의 경쟁력을 지탱해온 원천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사실은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다. 그는 톡톡 튀지 않지만 꾸준히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하영구’, 그리고 ‘씨티’라는 브랜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만 모범생’ 뱅커가 되다 “‘범생이’라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도회적인 외모와 달리 의외(?)로 고향은 전남 광양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상경했으니 사실상의 고향은 서울인 셈이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하 행장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실에서는 딱히 눈에 띄지 않고 방과 후에는 급우들과 축구공을 차며 학교 운동장을 누비는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기중학교에 낙방하고 당시 후기였던 중앙중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인생에서 그나마 닥쳤던 ‘시련’이라고 할까. 하지만 심기일전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1972년 서울대 상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하 행장과 중ㆍ고교 동기동창이다.
“의대나 법대를 진학하려 했지만 그쪽으로 가면 대학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어요. 하하.”
대학 시절은 엄혹한 ‘유신체제’ 아래서 보냈다. 상당수 대학생들처럼 하 행장도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도서관 대신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에서 보냈다고 했다.
당연히 학점 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내 MBA 경력을 인정해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뱅커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하 행장은 은행만 바라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저 관심이 있는 정도라고 했다. 이런 하 행장이 은행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글로벌 시장에 막 눈을 뜨게 된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과 맞닿아 있다. 하 행장은 대학 졸업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은 후 1981년 귀국했다. “한국에 들어오니 한국 기업들은 막 세계 곳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종합상사가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이었죠. 글로벌화된 기업에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세계 각국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굴지의 글로벌 은행인 씨티은행이 제격이었다. 여기에 국내 다른 기업들과 달리 MBA 경력도 인정해줬다. 이에 하 행장은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 뱅커의 길을 걷게 된다.
은행원, 최고 사윗감인 시대는 지났다 하 행장은 올해까지 32년여간 은행에 몸담아 왔다. 은행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는 “과거와 지금의 은행은 다르다”고 일갈했다.
예전 은행은 소위 ‘잘나가는 직장’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직종 중 하나였다. 하 행장의 표현대로 “사윗감으로 제일 좋은 직장, 밥 굶지 않고 잘리지 않을 것 같고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직장”이었다.
그는 “과거의 안정성을 통해 은행을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융합과 창의성을 강조했다.
“은행도 과거와 달리 한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능통해야 한다”며 “글로벌한 시야를 가진 인재, 금융 전문성을 가지고 타 분야와 융합할 수 있는 인재,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은행원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은 변함이 없을 터. 하 행장은 ▷높은 도덕성 ▷책임 있는 금융의 실행 ▷고객 중심의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상호 존중 등을 꼽았다. 이 역시 아주 평범한, 그렇지만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갖추기는 결코 쉽지 않은 덕목들이다.
‘직업=은행장’이라는 한국씨티號 선장 12년 32년 은행원 생활 중 무려 12년이 은행장이다. ‘직업이 은행장’이라고 불릴 만하다. 하 행장이 오랜 기간 ‘한국씨티호(號)’의 선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답변에서는 모두 ‘모범답안’을 내놓던 그지만 한국씨티은행의 행보를 묻자 다른 금융사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전략을 소개한다. 한국씨티은행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퇴직연금 등 여타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경쟁하는 분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하 행장은 “경쟁회사가 안 하는 사업을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더 힘들다”며 “특히 조직구성원들이 경쟁에서 처진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할 때 가슴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하 행장은 “은행의 중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한다면 남들이 하는 것도 안 하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행업이나 증권업을 잘한다고 보험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고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는 좋은 상품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설명했다.
하 행장은 같은 맥락에서 여타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소매 등의 분야에서 무분별한 점유율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대신 외환파생상품이나 웰스매니지먼트 분야 등 한국씨티은행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서 승부를 낼 계획이다.
‘히든 챔피언’의 해외진출 적극 지원
‘자기 자랑’에는 꽤나 겸연쩍어 하던 하 행장은 한국씨티은행 얘기가 나오자 ‘팔불출’ 못지않았다. 1967년 씨티은행이 한국에 진출한 이래 한국경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30달러에서 2만3000달러로 급성장하고, 다른 국가로부터 원조를 받던 후진국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탈바꿈한 유일한 국가가 된 과정의 산증인으로 한국씨티은행이 자리 잡았다는 점을 하 행장은 가장 뿌듯해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채권단을 설득해 240억달러의 해외채권을 연장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흥인장 훈장을 수여받은 적이 있다”며 “씨티은행은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을 때마다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고, 이 점에 대해 저를 비롯한 씨티은행 임직원들은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다만 외국계 은행 혹은 외국 자본에 대한 흑백논리로 씨티은행을 싸잡아 매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고 하 행장은 지적했다.
그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자동차 수출이 증가했다. 그런데 늘어난 이유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 일본 자동차메이커 제품의 수출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미국에서 만든 일본 자동차에 대해 미국인들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글로벌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된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시각도 글로벌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하 행장의 생각이다.
하 행장은 앞으로도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 한국씨티은행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특히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우수 기술을 갖고도 해외시장의 활로를 뚫기 어려운 중소기업들, 이른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보다는 ‘히든 챔피언’들이 해외에 나가서 활발하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경우 한국씨티은행처럼 한국에 기반을 가진 글로벌 은행들이 지원할 때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축구, 등산, 골프, 스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하 행장의 얼굴은 항상 활력이 넘친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또다시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열심히 일하는 거죠. 뭐.”
하지만 그는 “글로벌한 조직은 워낙 변화무쌍하다. 직원들에게 요구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방향성에 대해 저도 요구를 받는다. 생각해야 할 부문이 많다”고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금융계에서도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 CEO(최고경영자)의 교체시기 때마다 하 행장은 새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곤 할 정도다. 평범한 듯 특별한 그의 행보가 여전히 주목을 받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