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소화 기다리지 않고 채혈한 과실 인정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모유 수유 직후 채혈을 받았다가 심정지를 일으켜 뇌손상을 입은 영아와 가족에게 병원이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7부(부장 이창형)는 A(7) 양과 부모가 서울 양천구 소재 한 사립대학 병원 재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 양 가족에게 총 3억1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0년 1월 기침으로 해당 병원을 찾은 A 양은 채혈을 받자마자 심정지를 일으켜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었다.
조사결과 대기시간에 모유를 수유받던 A 양이 곧장 채혈을 받으면서 모유가 입안에 남아 기도를 막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아들은 수유 직후 자극을 받으면 구토할 수 있어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 음식물이 위를 통과할 때까지 2시간 남짓 기다린 뒤 의료행위를 해야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A 양은 심폐소생술 끝에 위급 상황을 넘겼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 일부가 위축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A 양은 간질 진단을 받았고, 생후 4년 가까이 지난 2013년 신체감정에서는 혼자 걷지 못하는 등 인지나 발달이 또래보다 크게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1심은 수유 직후 채혈한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심정지와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A 양에게 1000만원, 부모에게 각각 500만원씩 총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A 양이 심정지에 이르렀을 때 입에서 모유가 관찰된 점 등에 비춰볼 때 의료진이 수유 직후 채혈을 한 과실 때문에 기도 폐쇄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채혈 직후 A 양이 이상 징후를 보여 어머니가 2차례 알렸지만 간호사가 ‘괜찮다’며 상태를 살피지 않았고,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비로소 확인했다”며 “의료진이 경과 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 양의 심정지 원인이 채혈 뿐 아니라 이미 감염돼 있던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에 있었던 점을 들어 병원의 배상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