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열망을 품은 도전 (2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젊은이들은 아름답다. 젊은 그들 앞에서는 어떠한 경우나 상황도 모두 미화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미학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단점은 있을 것이다. 순간이 아름답고 그들의 모든 행위가 아름답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이 벌이는 짓의 실체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이 어려워졌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젊은 그들은 상황을 쉽고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말이다. 젊은 그들이란 강유리와 백광돌, 그리고 함께 라운드하는 일본인 학생 커플을 일컫는 말이다.

“아저씨, 이제 항문 치질 업써요? 동빵신기처럼 여푸로 걷지 않아요?”

“하모, 하모. 다 나았지요. 까딱 없어요.”

“까딱?”

“돈 워리, 비 해피!” 말도 안 되는 회화를 하염없이 지껄이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들은 어느새 쑥스러움에서 해방된 상태였다. 이왕 벗은 걸 어쩌랴. 어차피 밑천까지 다 들여다 본 것을 이제와 새침 떤들 무엇하랴.

“어때요? 유리 양. 처음에 옷을 벗고 나섰을 땐 무척 색스러웠지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 기억나요? 색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결국엔 공허한 것이라고요.”

백광돌은 일본인 학생들에게는 엉터리 영어로 땜질하다가도 막상 강유리와 둘이서 페어웨이를 걷게 되면 진지해지곤 했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 장님이 될 것이라고 믿어왔건만 막상 서로 간에 옷을 벗어던지자 완전한 합일을 이룬 것처럼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성적 매력을 동시에 누리며 골프를 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천국의 길을 걷는 행운아였다.

“색? 섹스를 의미하는 거예요? 섹스가 공허하다고요? 하긴 성 결합 후에 오는 허무감은 무척 짙다고들 하더군요.”

강유리는 문득 하와이 비치웨어에 인접한 숙소에서 백광돌과 상열지사를 벌이던 추억을 되살려내는 모양이었다. 그날 백광돌에게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해달라고 애걸했었지. 느낌대로 운명대로 마구 대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신희영과 아버지 강준호가 들이닥치는 통에 백광돌이 바바리맨 차림으로 비상용 완강기를 타고 탈출하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던 것이다. 그날…차라리 끝장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과연 허무함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을까?

“오빠, 저 일본 여학생들 참 스스럼 없지 않아요?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어째서 저 애들처럼 되지 못할까? 어째서 서먹함을 감출 수 없는 걸까?”

유리는 이렇게 말하더니 대범하게 양팔을 벌려 만세 부르는 시늉을 했다. 물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으므로 빤히 그녀를 바라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옷을 벗으니 날개가 생긴 것 같아요. 이젠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게 된 거라고요. 자! 내 벗은 몸을 마음껏 감상하세요.”

그녀가 만세를 부르자 활짝 날개를 편 그녀의 육체는 남부 프랑스의 강렬한 햇빛을 찬연히 받으며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녀의 행동은 종교적 수행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수행하는 자세로 자유로운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 몸도 실컷 감상해라, 유리야.”

백광돌 역시 두 팔을 활짝 들어 올려 만세를 불렀다. 체면은 사랑을 비하시키고 도덕은 성을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했나? 라제니 골프장의 푸른 잔디 위에서 체면과 도덕을 훌훌 팽개쳐버리자 그들 사이에는 유독 싱싱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언니! 게임 기브 업? 기권한 거예요? 아직도 항문 아파요?”

깔깔 웃는 일본 여학생들의 나체 너머로 라제니 골프장의 푸른 하늘이 넘실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