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간 ‘말의 성찬’ 속에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한 행정구역 조정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2005년 10월 17대 국회 특별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진행됐던 기존의 논의가 개편방향과 통합지역을 미리 정해 놓은 ‘하향식’ 구조였다면, 지난2월 여야 합의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 추진위원회(위원장 강현욱)’가 이번에 진행하는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성격이 강하다. 11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국 순회 토론회 첫 행사에서는 행정구역 통합때 지역별 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교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론으로 이르는 길에는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지금까지 6년간 이어진 논의보다는 ‘기본자세’가 나은 편이다.
지금까지 논의는 ▷2006년 2월 국회행정체제개편특위가 전국을 70개 광역시로 개편하는 보고서 채택했다가 무산된 것 ▷2008년 11월 ‘도를 유지한 채 전국 시군구를 50~60개로 통합하자고 했다가 폐기된 의원입법안 ▷광역도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연방제 안 등이다. 70개 광역시 개편안은 집권세력이 지방을 약화시키려는 ‘정치’가 개입됐다는 반발에 부딪쳤다.
탁상 논의가 목표를 숫자에 두다보니 국민 공감을 얻기 못하자, 정부는 2009년 자율통합 신청을 받았다. 수도권 7곳, 충청 5곳, 호남 3곳, 영남 3곳 등 총 18개 통합지에 46개의 지자체가 신청했다.
성남ㆍ하남ㆍ광주 등 5곳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됐으나 하나에서 열까지 지리한 다툼을 벌이더니 결국 18개 통합지 중 창원ㆍ마산ㆍ진해만이 통합에 성공하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말았다.
수원의 주도에 화성ㆍ오산이 반기를 들었고, 안양의 제안에 군포ㆍ의왕이 외면했다. 순천의 주도에 여수ㆍ광양ㆍ구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며, 청주의 주도에 청원이, 부여의 주도에 공주가 고개를 돌렸다. 지역특성, 주민의 삶은 고려하지 않은채 큰 도시가 작은도시를 흡수통합해 정부로부터 각종 인센티브를 얻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11일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정석기 경기도경제단체연합 사무총장은 “큰 도시가 밥풀만 따먹으려다 보니 자율통합 조차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정교한 규정보다는 통합에 성공한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면서 “통합에 성공한 창원시도 마산 진해쪽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행정비용 절감효과도 미미하며 규모의 경제 효과를 올렸는지 의문시 된다”고 꼬집었다.
위원회는 이번에 227개 모든 시군구가 인접지역과 통합했을 때 시너지가 있는지 전수조사할 방침이다. ‘어디 어디가 짝짓기 하면 괜찮겠다’는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채 객관적 자료와 여론을 토대로 통합의 기준을 처음부터 찬찬히 마련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허훈 대진대 교수는 시군 통합기준으로 행정효율성, 생활권 공유, 지리적 특성, 인구, 면적, 재정력 등을 제시했고, 한상우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구, 면적, 자주재정력, 지역경제력, 인구대비 공무원수, 통합에 따른 비용절감액 및 주민편익 증감액 등 7가지 기준을 내놨다.
허 교수는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통합기준의 적용을 지양하자고 했다. 임정빈 성결대 교수는 통합 촉진요인으로 생활권, 발전가능성 외에 역사적 동질성을 넣어 주민의 정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들은 “민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기준은 느슨할수록 좋겠고, 지역의 자율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고, 황용원 수원YMCA 사무총장은 ‘주민이 잘살게 되느냐’, ‘편리해지느냐’ 등 문제를 통합판단의 우선 기준으로 제시했다.
주민 좋자고 하는 행정체체개편이 정치가나 행정가만 좋은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돌이켜보면 숫자만을 목표로 했던 몇 년전 통합논의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을 때 주민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수 있다.
아울러 탁상에서 보는 편의와 주민이 느끼는 편한 삶은 다르다는 점을 정책입안자들은 알아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과정에서 우선순위는 민심, 다음으로 효율성이어야 한다. 어떻게 통합해야 표를 더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정치가 개입한다면 곧바로 중단하는게 차라리 낫다.
위원회는 오는 8월까지 시군구 통합기준을 작성, 공표한뒤 올해 11월까지 지자체장, 의회, 주민의 통합건의 받고, 지역 여론수렴을 위한 공청회와 위원회 의결을 거쳐 내년 6월까지 통합방안을 마련해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한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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