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등에 떠밀려 적성불문 입학한 대학에 고민 -늦게 주체 찾고,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의 시작” 많아 -전문가들 “진정한 어른 위한 고민,사회적분위기 필요”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1.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이주성(25ㆍ여) 씨는 2011년 어렵게 대학 입시를 통과해 서울 A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첫 학기를 다니고 자퇴했다. 이 씨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밤 늦게 중간고사 대비 공부를 하는데 계속 ‘대학에 왜 왔지?’ ‘대학을 꼭 다녀야 하나?’라는 질문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못내리겠더라.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무 생각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대학 가야지’하고 왔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아서 갔는데 생각해보니 대학교와 법학과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었다. 그냥 부모에 의해 선택 내려진 것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춘기 때도 느끼지 못했던 정체성 혼란 같은 걸 심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11년 6월말 자신이 진짜 원하는 모습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학교에 자퇴계를 냈다. ‘자퇴’라는 선택부터 예전처럼 부모나 교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내렸다. 이후 소설을 쓰는 데 행복을 느낀 이 씨는 지난 2013년 경기도 소재 한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재학 중이다. 그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다”고 말한다.
앞선 이 씨의 사례처럼 학교를 떠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졸업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업을 그만 두는 ‘중도탈락’하는 대학생의 경우 2009년 9만161명에서 2014년 16만2723명으로 늘었다. 중도탈락률의 경우도 2009년 4.31%에서 2014년 6.39%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도 탈락 사유도 2014년을 기준으로 미복학(6만2449명)이 가장 많았고 자퇴(5만6295명)가 그 뒤를 이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은 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미성년자였던 학창 시절 떠밀리듯 대학입시를 치르고 입학해 대학을 다니다 갑자기 주어진 성인으로서의 자유와 책임의 순간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졸업 이후 건축업에 종사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지난 2013년 서울의 한 대학교 실내디자인과에 입학했던 강태민(23) 씨도 군복무를 마쳤지만 복학을 미루고 있다. 강 씨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장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며 요즘 고민에 대해 말했다. 그는 “작곡을 배우고 싶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 복학을 하면 다시는 기회가 안올 것 같다. 지금까지 다닌 게 아깝긴 하지만 자퇴도 고민중이다. 길게 보면 그게 시간이나 비용을 절약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중도탈락을 막기 위해 영미권 사회에서는 대학 진학 전 1년 간 충분한 고민과 체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갭이어(gap year)’를 마련해두고 있다.
지난 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딸 말리아가 대학 진학을 미루고 ‘갭이어’를 보내겠다고 발표해 갭이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갭이어는 유럽에선 일반적인 입시문화고, 미국에선 최근 유행하기 시작했다. 갭이어 프로그램 인증단체 미국갭협회(AGA)에 따르면 연간 4만명의 학생들이 갭이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2006년 이래 매년 늘고 있다.
AGA의 조사에 따르면 갭이어 참여자 절반 이상이 이 기간에 자신의 진로와 전공을 확고히 설정하게 됐다고 했다. 성인으로서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상 주어지는 시간적 여유가 진로 설계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을 줄이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대학 내에서 관련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선회 중부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중도탈락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성인이라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뒤늦게 삶의 주체로서 고민하며 선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입학 전 전공ㆍ대학 교육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갓 입학한 대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 교육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진정한 어른으로서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의 필요성을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