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승일 기자] 살충제, 항균제를 포함해 세정제, 화장품 등 모든 생필품으로 살생물제 관련 조사가 확대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가 피해 재발 방지 대책으로 살생물제 전수조사 등 살생물제 전반에 대한 관리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200명이 넘는 피해자들 발생한 뒤여서 정부의 뒤늦은 대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살생물제(Biocide)란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없애기 위해 만든 화학물질을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해 각종 항균, 방균제 등이 모두 해당된다. 정부는 세정제, 표백제, 방향제, 접착제 등 생활화학제품 15종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하는 안전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이번 살생물제 전수조사 계획은 이들 제품을 포함해 모든 생필품으로 확대한다는 의미다.

환경부는 유럽연합(EU)이나 미국처럼 살생물제를 목록화해 관리하고, 단계적으로 위해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년 동안 살생물질과 살생물 제품 관련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살생물 제품 허가제 도입도 검토해 허가 가능한 물질만 제품 제조에 쓰도록 하고, 비허가물질로 만든 제품은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할 방침이다.

해당 제품에 사용되는 원료물질의 위해성 평가와 안전기준, 표시기준 등도 강화된다. 지난해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생활화학제품의 위해성 기준을 강화하는 등 보완 조치를 했지만 추가로 살생 성분이 있는 제품을 전수조사해 법률에 해당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가습기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판정 절차도 보다 신속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피해자 조사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아산병원 측과 협의해 3차 피해조사 신청자 총 752명에 대한 조사 및 판정 완료 시점을 당초 2018년 말에서 2017년 말로 1년 앞당길 계획이다. 또 국립의료원을 조사기관으로 추가 지정해 4차 피해 신청자 조사를 올 하반기부터 착수, 내년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4차 피해 신청자 접수는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됐다.

이호중 환경부 환경보전정책관은은 “보다 신속한 조사를 위해 다른 대형 병원들을 조사기관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라며 “다만 책임소재 문제 등으로 꺼려하는 병원이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1차 질병관리본부(361명), 2차 환경부(169명)를 통해 피해 신청을 접수, 총 530명의 신청을 받았고 이 중 221명을 지원 대상으로 결정했다. 4월 현재까지 이들 221명에게 총 37억5000만원이 지급됐다. 환경부는 이와 관련해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13곳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범위도 비염, 기관지염과 같은 경증, 간이나 심장, 신장 등 폐 이외의 장기 질환으로까지 확대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폐 이외 질환 검토 소위원회’를 구성, 운영키로 했다.

소위원회는 1∼3단계 건강모니터링 자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피해자 질환정보 자료 등을 분석하고, 주요 제품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독성학적 연구, 역학조사, 조직검사 등을 하게 된다. 환경부는 또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조사ㆍ판정위원회, 환경보건위원회 등에서 조사 및 판정 기준이 마련되면 개인별 피해 판정을 거쳐 추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반면 이번 사태가 확대되기 전에 이 같은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다시 추가 신청을 받는 등 정부의 뒷북 대응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정책관은 “당시에는 피해자들의 추가적 요구나 상황 등을 보고 추가 신청 여부 등을 결정하려고 했다”며 “그동안 피해 판정이나 조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지만 추가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