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튀기는 어렵고 묻히기는 쉽다. 등장과 쇠락이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연예계. 특히나 험지인 곳이 있다. ‘걸그룹’의 세계다. 너도나도 섹시와 귀여움, 청순 등 ‘여성성’을 강조하니, 엇비슷한 그림이 줄을 잇는다. SES,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걸그룹을 시작으로 여자친구 트와이스 마마무에 이르기까지 4세대 걸그룹까지 진화한 요즘이다.

생명력 짧은 걸그룹 멤버들이 ‘살 길’을 찾겠다며 ‘각개전투’를 선언했다. ‘연기’로의 외도는 흔했다. 이젠 본업을 살린 홀로서기다. 두 가지 생존전략이 떠올랐다. 음악적 역량을 강조하거나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전략이다.

▶ 생존전략 1. 가창력은 ‘기본’, 프로듀싱 역량까지=‘가창돌’마저 넘쳐나는 시대다.뛰어난 노래실력을 이미 인정받은 걸그룹 멤버들의 ‘홀로서기’는 음악적 역량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제2의 길을 찾고 있다.

정은지는 ‘에이핑크’ 타이틀을 떼고 데뷔 5년 만에 홀로 섰다. 초반 성과가 좋다.

지난 18일 발매된 에이핑크 정은지 솔로앨범 ‘드림(Dream)’이 8개 음원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싱가폴, 타이완, 말레이시아, 홍콩, 베트남 등 5개국 아이튠즈 앨범차트에서도 1위에 등극했다.

‘복면가왕’(MBC) 등 몇 편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가창력을 인정받은 정은지가 이번 앨범에서 강조한 것은 ‘싱어송라이터’로의 역량이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청순한 소녀 컨셉의 사랑스러운 노랫말은 모두 덜어냈다. 그간 ‘갈고 닦았다’는 ‘실력’만을 선보인 ‘화려한 외출’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도 두 번째 솔로앨범을 선보였다. 제아는 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Mnet ‘프로듀스101’에서 멘토로 출연해 실력파 보컬로의 면모를 선보였다.

이번 앨범에서 제아는 가창력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솔로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해 차기 여성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를 보여줬다. ‘여자 윤종신’을 꿈꾼다는 힘찬 발걸음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퍼포먼스 위주인 걸그룹 내에서는 음악적인 능력이 많이 노출되기 어렵다”며 “솔로 활동을 통해 가창력과 더불어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 차별화된 음악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 생존전략 2. 엇갈린 이미지 승부…똑같은 ‘섹시’도 다르다=같은 컨셉이라도 ‘흥행’은 엇갈린다. 걸그룹 단골 컨셉인 ‘섹시 코드’는 진화하거나 퇴보했다.

섹시 아이돌의 대명사 격인 현아는 포미닛은 몰론 장현승과의 유닛 트러블메이커, 솔로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해온 걸그룹 멤버다.

2011년 ‘버블 팝’ 앨범을 통해 첫 솔로 활동을 시작한 현아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르익는 섹시미를 강조하며 팬들과 만났다. 2015년은 현아에게도 전환점이 된 해다.

그 해 8월 발매한 네 번째 솔로앨범 ‘잘 나가서 그래’를 통해 현아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섹시 컨셉에 힙합을 더하자 이른바 ‘센언니’로 등극하게 됐다. 이 무렵 현아는 화제의 여성 래퍼 서바이벌 Mnet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한 힙합 흥행에 발 맞춰 음원 차트를 장악했다. 타이틀곡 ‘잘나가서 그래’ 외에도 ‘런 앤 런(Run&Run)’ 등 앨범에 수록된 5곡 모두 음원 차트에서 줄세우기를 실현했다. 1위부터 5위까지 현아의 독식이었다. 이 앨범을 계기로 현아는 섹시의 아이콘에서 ‘걸크러쉬’ 대열에 오르며 새로운 이미지를 안게 됐다. 그 해 진행된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선 박진영 엠버를 제치고 베스트 솔로 퍼포먼스 상을 가져가기도 했다. 실력이 더해진 이미지의 재창조였다.

‘섹시’로 정면승부했으나 순위권 궤도를 이탈한 걸그룹 멤버도 있다. 시크릿 전효성은 지난달 28일 미니앨범 ‘물들다:Colored’를 들고 나왔다. 새로운 모습의 솔로 가수 전효성을 찾아보긴 어려운 앨범이다.

전효성은 그룹 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섹시 컨셉을 앞세웠지만 익히 봐온 모습에 경쟁력이 실리지 않았다. 타이틀곡 ‘나를 찾아줘’엔 작사가로도 참여했으나, 아이돌 이미지를 벗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과도 저조했다. 일부 음원 차트를 제외하고는 60위권 밖을 맴도는데 그쳤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섹시 컨셉은 워낙 많이 나왔고 이젠 대중들도 식상함을 느끼는 단계다. 섹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걸그룹, 생명연장의 꿈…‘실력’이 승부수=10대 중후반으로 뚝 떨어진 연령대는 5년차 이상 걸그룹 멤버들의 자리를 위태롭게 한다. 기존에 안고 있던 이미지와 데뷔 시절의 풋풋한 외모로 겨루기엔 나이 어린 경쟁자가 너무 많다. 익히 얼굴을 비춘 걸그룹 멤버들의 생명연장의 비법은 결국 실력이다. 데뷔 5년~7년, 재계약 시점과 맞물린 이 즈음은걸그룹 멤버들이 변화를 직면하는 과도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명이 짧은 걸그룹 멤버들은 연기, 예능으로 활동폭을 넓히고, 뛰어난 가창능력이나 가수로서의 역량을 앞세워 저마다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나날이 입지가 좁아지는 걸그룹의 세계에서 ‘롱런(Long-Run)’하기 위한 전략을 찾아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는 셈이다.

이택광 대중문화 평론가 경희대 교수는 “30대까지 ‘걸(Girl)’일 수 없다”며 “걸그룹은 초기 경력일 뿐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해 솔로로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능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이나 ‘불후의 명곡’ 등이 걸그룹을 솔로로 데뷔시키기 위한 장치”라며 “‘아이돌도 노래를 잘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줘 제 2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