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혐의 입증 어렵고 신고 꺼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을 탈취, 유용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가 지난 6년간 단 2건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술유용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지만 정작 제재를 받은 사례는 적어 정부 정책이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천신만고끝에 이뤄낸 중기 기술이 ‘봉’이었던 까닭이 분명해진 것이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하도급법상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자료 요구ㆍ유용을 금지한 규정이 제정된 이후 지난해까지 기술 유출 행위로 제재가 이뤄진 것은 LG화학, LG하우시스 2건에 불과했다.

LG화학은 2013년 3∼10월 디지털 인쇄 방식을 이용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배터리 라벨 제조 하청업체로부터 기술 자료를 23차례에 걸쳐 요구해 받아냈다. 이후 하청업체와 거래를 중단한 뒤 해당 기술로 중국법인에서 직접 배터리 라벨을 제작하다 지난해 공정위에 적발돼 과징금 1600만원이 부과됐다.

2014년에는 LG하우시스가 중소기업의 기술 자료를 요구하면서 서면교부 의무를 지키지 않아 공정위에 시정명령을 받았다. 원청기업이 정당한 사유로 하청기업에 기술 자료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서면 발급을 통해 관련 자료를 남기도록 돼 있다. 다만 관련 기술을 유용했다는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과징금이 부과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기술 유용 관련 제재가 적은데 대해 공정위는 원청업체가 기술 자료를 강제로 요구ㆍ유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하청업체들의 신고도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10~2015년 공정위에 접수된 중소기업 기술 유용 관련 신고는 총 12건. 이 중 2건만 제재가 이뤄졌고, 6건은 신고인 취하, 4건은 자료 불충분 등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박제현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 과장은 “하청업체들의 경우 원청업체의 보복을 우려해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일부 업체들의 기술유용 혐의가 드러나도 강제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워 제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공정위는 5월부터 대기업의 기술 요구 및 유용 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현장 직권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피해 기업의 신고가 없어도 공정위가 자체적으로 기술유용 혐의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기술유용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법 위반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최대 5억원 이내에서 정액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지난 1월 하도급법 시행령도 개정했다. 아울러 하청업체의 신고로 인한 보복행위가 한 번이라도 적발될 경우 해당 원청업체의 입찰참가에 제한을 주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연내 도입하기로 했다.

원승일 기자won@heraldcorp.com